묵상자료

아직도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일까요? / 고전 11:2-34.

박성완 2022. 3. 29. 00:00

묵상자료 7621(2022. 3. 29. 화요일).

시편 시 68:25-27.

찬송 2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정신과 물질은 다르다고 말한다. 이나마 말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믿지는 않는 성싶다. 머지않아 정신도 물질이라고 선언할 지경이 닥칠 것만 같아 두렵다. 옳은 것과 이로운 것을 분별하라. ()를 탐하지 말고, ()를 택하라. 이런 분부가 새겨지던 때가 있었다. 이때는 정신이 앞서고 물질을 뒤로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말씀을 뒤집어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았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니다. 무슨 수를 쓰든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이 자자한 까닭이다. 돈으로 무엇이든 흥정할 수 있는 세상이다. 돈에 따라 마음먹기가 달라지는 판국이다. 인정도 돈에 따라 들고난다. 돈 없이 늙으면 며느리의 눈치는 고사하고 어린 손자의 재롱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젊어 한때 한몫 잡지 못한 인생을 안타까워하는 늙은이들은 파고다 공원 같은 데 가면 얼마든지 만날 수가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혼수가 적다고 신부를 때려죽이고 감옥에 가는 신랑이 있는가 하면, 결혼반지가 초라하다고 결혼을 물리고 돌아서는 신부가 한 둘이 아니다. 이제 마음 하나로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말은 멀쩡한 거짓말이다. 혼사(婚事)도 사람보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보고 하는 판이다.” 윤재근, <내 마음속 조용히 살어리랏다>, p.117.

 

2. “여자가 머리를 가려야 하는 이유(2-16)”주님의 성찬(17-34)”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항상 힘든 문제는 성경이 기록되었던 2천 년 전의 시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어떤 목적과 의미로 쓰여진 말씀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남자가 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에는 머리에 무엇을 쓰면, 남자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기도를 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지 않고 전하면 자신의 머리인 남자를 욕되게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머리에 무엇인가를 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을 근거로 해서 훗날 기독교회는 여자는 예배를 드릴 때 머리에 수건을 쓰도록 하는 전통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른바 머리에 수건을 쓰는 전통에 대해서 1세기 사회 현상을 연구했는데, 당시에 민낯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대부분의 여인은 거리의 여인들(창녀)이었고, 정숙한 부인들은 이들과 구별된다는 의미로 수건을 머리에 쓰고 다녔다는 것을 알아냈다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를 출입하기 위해서 외출을 해야 하는 여인들은 일반 호색한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 방편으로, 그런 거리의 여인이 아니라는 표식으로 수건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 역시 이런 사회현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못할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수건을 쓰는 문제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마치 남존여비 사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악용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선 성경 역시 자신의 시대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상, 남존여비라는 시대적 현상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성경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흥미로운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남자를 창조하신 후, 그 남자에게서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확인한 다음, 남자는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다는 역설적인 사실을 주목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남자도 여자인 어머니를 통해서만 출생한다는 것을 밝힘으로, 남자든 여자든 우열을 가지고 다툴 개재(開齋)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 사도는 말미에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은 애당초 남자와 여자의 우열을 따지려고 하지 않았음을 주지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남자 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역사의 흐름에 넋 잃고 방관자처럼 떠밀려 내려가지 말 것을 암시하고 있다할 것입니다. 관련된 주제를 뒤적이다 보니까, 이 구절이 여성 목사안수 불가의 증거자료(proof text)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여자가 앞치마나 두르고 밥이나 하고 청소나 할 일이지, 무슨 목사냐?” 거나, “성경에서 여성 안수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주장들 말입니다. 더 이상 시대를 거꾸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할 과제가 예있다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