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마저 말라버렸을 때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사랑. / 고후 1:1-11.
묵상자료 7634호(2022. 4. 11. 월요일).
시편 시 69:33-36.
찬송 4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얼레빗으로 머리를 빗는 분들 계실까요? 그 옛날에 쓰던 빗 중에 빗살이 총총한 참빗, 또 성긴 것을 얼레빗이라고 했습니다. 긴 머리채를 먼저 얼레빗으로 빗어준 다음에, 참 빗으로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세심하게 빗는 여인의 모습, 옛 조상의 모습을 그리는 작품에 많이 등장을 하지요. 조선 여류 시인 황진이는 반달을, 직녀가 견우와 이별한 뒤 하늘에서 던져 버린 그녀의 얼레빗이라고 했습니다. 얼레빗은 옛 여인들에게 머리를 다듬는 도구이자 마음을 가다듬는 소도구였나 봅니다. 빗으로 차분하게 빗어 올린 머리에 꽂았던 비녀는, 여인의 흰 목덜미를 유난히 도드라지게 보여 주기도 했지요. 결혼을 하고 머리를 올려 비녀를 꽂는다는 것은 이제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분에 따라 각기 다른 문양과 재료로 만들어진 비녀, 여인의 마음이나 정조를 의미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지요. 마지막 보루처럼 비녀를 빼면서 어려운 곤경을 헤쳐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 아릿한 추억의 한 장면으로 마음속에 품고 계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4월 15일 방송>
2. “인사(1-2절)”과 “환란 후에 받는 위로(3-11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고린도 후서는 바울 사도의 6편으로 구성된 자서전적인 서신으로 불리고 있으며, 오늘의 본문은 세 번째 쓴 “화해의 편지” 중 일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린도후서는 전체가 하나의 편지가 아니라,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려고 써 두었던 여러 편의 단편들을 모아둔 수집록으로, 첫 번째는 “변호의 편지”를(2:14-6:13, 7:2-4), 둘째는 변호의 편지가 별 성과를 내지 못하자 디도의 손에 들려 보낸 “괴로움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10:1-13:14), 이 편지와 디도의 방문이 고린도 교회가 크게 뉘우치고 회개하는 효과가 있어 사도가 기뻐서 쓴 “화해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오해가 풀려서 이해가 될 때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할 것입니다. 사도는 그들에게 위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일반적인 특징의 하나는 시련과 환란이었습니다. 요즘 연길 등 두만강 주변에서 공식처럼 진행하는 예배 참석자들에게 교통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군인 교회에서 하듯 초코파이를 주는 것도 아닌, 주는 것이라곤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에게서 욕을 먹고 쫓겨나는 것이 다반사(茶飯事)였던 그 시절의 교회를 생각할 때, 그들에게 절실한 것은 위로와 격려가 전부였을 것입니다. 사도는 이런 시련과 역경 그리고 환란이란 무의미한 고난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통해서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이었으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마저 잃어버리기도 했다고 말합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겪은 시련을 연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씀입니다.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았고, 두 손과 두 발에 쇠사슬에 묶여서 철창 감옥에 갇혔었고, 내일 동이 트면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두렵고 떨리는 순간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들은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을 격려하고 궁리하는 것을 다 포기해 버리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을 믿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런 죽을 고비를 하나님께서 넘게 해 주셨고, 앞으로도 건져 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포자기 하기 전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을 어떻게 헤쳐 나올 수 있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이 캄캄한 순간이 있었고, 그래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런 순간에도,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하나님이 주실 희망의 아침을 생각했던 그 답답하던 날들을 말입니다. 제게는 학생회관 작은 기도실에 걸려 있던 십자가위에 매달려 죽으신 주님의 축 늘어진 머리를 비추는 한 줄기 스포트라이트의 그림이 제 삶의 기력을 북돋는 원천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다행스럽게도 매일 학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찾아서 잠간씩 그림을 응시하고 짧은 기도를 드린 후 교실로 향했던 추억이, 모든 힘든 순간마다 스치며 오버랩 되었던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내 안에 있는 용기도 아니고 지혜도 아니라,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에 있었던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