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생명과 직결된 하나님의 말씀. / 요일 1:1-10.

박성완 2022. 6. 6. 00:00

묵상자료 7690(2022. 6. 6. 월요일).

시편 시 78:47-52.

찬송 3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른 더위를 피해서 산으로 바다로 그리고 계곡으로 향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현충일이었던 어제, 모처럼 짬을 내서 집 근처 가까운 산에 올랐습니다. 정상을 향해 오르는 좁은 산길 모퉁이에서 기분 좋은 장면과 마주했는데요. “감자를 무인 판매합니다.” 이렇게 쓴 안내문과 함께, 옥수수 호박 감자 고구마 같은 것들이 놓인 작은 바구니를 봤습니다. 옆에는 돈을 넣을 수 있는 작고 예쁜 그릇이 함께 있었고요.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길이기는 했어도, 분명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기 때문에, 물론 야채 등을 팔고 있었겠지요. 그런데 뚜껑도 없이 가지런히 담겨진 돈이며, 물건들에 조금 놀랐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길에 놓인 호박과 옥수수, 이러한 것들을 담은 바구니는, 보이지 않는 상대를 믿겠다는 하나의 약속이지요. 저도 잘 익은 옥수수 몇 자루를 고르고 돈을 셈해서 그곳에 넣고 산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길에 느낀, 쏠쏠한 기쁨과 충족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 어떤 물건을 사고 나서 느낀 뿌듯함보다도 훨씬 더 강했는데요. 사람사이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는 생각 새삼 들었습니다<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67일 방송>

 

2. “생명의 말씀(1-4)”하나님은 빛이시다(5-10)”을 읽었습니다. 요한 서신을 읽게 되었습니다. 우선 서신으로 분류되지만, 요한일서는 서신의 성격이나 형식보다는 오히려 설교에 가까운 문서로, 초대 교회 안에 있던 거짓 교사들로부터 교회를 지키려는 목적에서 목회적이며 논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와의 관계에서는 어휘와 문체가 유사한 반면, 차이점도 더러 있는데 실현된 종말론의 요한복음서와는 달리 요한일서는 미래적 종말론을 택하고 있는 점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견해는 요한서신이 요한 학파의 저작으로 인식하는데, 초대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사도들의 권위를 이용한 저작들이 많았다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시다.”는 명제는 요한복음서의 중심 주제라 할 수 있는데, 본문 역시 이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요한일서는 이 말씀을 생명의 말씀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몇 차례 묵상자료에서 말씀드린바 있습니다만, 하나님을 말씀으로 규정한 것은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신비주의자들처럼 하나님을 어떤 신비적 형상이나 신비적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속에서만 인식할 수 있고,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부터 출발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다스리시며 말씀으로 심판하신다는 분명한 내용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하나님을 이해하려 한다거나, 하나님의 말씀과 별개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말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점에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과 관련된 말씀이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생명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요한일서의 저자는 작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겠다고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주장을 합니다. 첫째 생명의 말씀은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존재가 창조 이전으로 못을 박아두는 말씀입니다. 둘째 그 생명의 말씀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봤다고 증언합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신비현상을 두둔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 생명이 나타났을 때, 우리는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증언합니다.”(2)라고 곧 이어서 해명하는데, 이는 성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나눈 친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3). 그럼으로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생명의 말씀이신 하나님과 말씀을 듣기도하고 눈으로 볼 수도 있고, 손으로 만지는 은총을 입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한 때 어느 선교단체가 하나님의 말씀과의 교제를 두고서 마치 신비 체험을 하는 듯,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진다는 표현을 해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는데, 오늘 본문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교제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