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사람의 공로인 율법이 아니라, 예수의 공로인 복음으로 구원받는 진리. / 갈 3:1-14.

박성완 2022. 6. 30. 00:00

묵상자료 7714(2022. 6. 30. 목요일).

시편 시 83:5-8.

찬송 20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백병동 선생은 의도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의 작품에는 저절로 한국의 냄새가 묻어 나온다는 말을 했습니다. 꾸민 음이나 선율은 양악에서 빌려와도, 그 음악의 색채는 역시 한국적이라는 것이지요. 나재인 시 백병동 곡 <빨간 석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낭만적인 느낌의 이 이 곡도 어딘지 한국적인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빠알간 석류가 터져, 영롱히 빛나는 구슬. , 사랑이 알알이 붉은 마음을 맺어, 푸른 하늘가에 살포시 울려 퍼지는 사랑의 진주를 곱게 만든다. 빨갛게 퍼지는 등불처럼, 행복이 스며드는 국화주머니 속. , 아침 해 빛나는 금빛 부챗살같이 찬란히 마음 속 깊이 스미는 유리알 같이. 맑고 맑은 사랑의 노래를 만든다.”

   유리알 같이 맑은 사랑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작곡가 백병동이 대학을 막 졸업한 시기인 1962년 친구의 결혼식 축가로 지은 곡입니다. 노랫말은 친구 여동생이 지었고요. 곡조 또한 강렬히 치솟는 느낌보다 부드럽고 은은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630일 방송>

 

2. “율법이냐 믿음이냐(1-14)”을 읽었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엊그제 국민일보에는 어느 큰 신학교에서는 이르면 내년부터는 신학교 커리큘럼에 <목회자 2중직> 과목도 신설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동안에는 바른 설교 바른 목회를 위해서 목회에만 전념하도록 목회자의 2중직을 금했는데, 그 숭고한(?) 뜻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행여 벌써부터 바른 설교와 바른 목회를 위한 꿈을 접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오래 전부터 선교지에서는 소위 전문직 사역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태권도나 의료 기타 전문적인 생업을 가진 이가 선교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자신이 가진 전문직을 통해서 사람을 만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순기능이라고 하겠지만, 생업을 해결하는 문제 때문에 전문직을 필요로 한다면 문제는 달라질 것입니다. 저 역시 바울처럼 자급목회를 꿈꾸며 부딪혀 본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하나님께서 어느 고등학교 교목실장으로 저를 불렀을 때 깊이 고민했었습니다. 학원목회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조금씩 내용을 알아보니까, 소위 요즘 말하는 2중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포기했습니다. 재주도 없는 사람이 두 몫을 감당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율법이냐 믿음이냐는 문제를 묵상하라고 말씀합니다. 목회 일선에 있는 분들에게 율법이냐 믿음이냐의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도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율법이란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명하신 613가지의 조문들을 지키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율법은 우리들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하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모두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이외의 여타 종교들은 율법종교를 표방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불교가 말하는 성불(成佛)하시라.”는 축원은 부처를 닮아 선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다른 종교 역시 선하게 살면 극락이든 천당이든 갈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을 만족시키는 삶이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 가는 일체의 생활을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회는 율법의 최종 목표를 몽학선생(혹은 초등교사/παιδαγωγς(파이다고고스)라고 부르는데, 이를 원문으로 분석하면, 사춘기 이전의 아이를 뜻하는 "파이스"πας"이끌다"는 뜻을 가진 "아고"ἄγω 붙어서 된 말로, 주인의 아들을 그의 스승에게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하는 종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몽학선생이란 선생이 아니라, 진짜 선생에게 주인의 어린 아들을 데려다 주는 심부름꾼에 불과한 종입니다. 그러면 율법이 몽학선생의 역할을 하는 그 스승이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율법은 백 번 천 번 힘쓰고 노력해도 그 목적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게 할 뿐이라는 사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불가능과 절망에서 가능으로 인도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비롯해서 모세와 다윗 등 모든 성경의 위인들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