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로마서에서 배울 한국 교회의 전도방식. / 롬 1:1-15.

박성완 2022. 7. 11. 00:00

묵상자료 7725(2022. 7. 11. 월요일).

시편 시 86:1-3.

찬송 26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432532 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했을 때는 던져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될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얼마 전에 작고하신 정채봉님의 시 <만남> 중의 한 구절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만남을 하고 계세요? 매일 아침 음악과의 만남, 그리고 저와의 만남이 힘들 때 위로되는 손수건 같은 그런 만남이었으면 하는 바람 가져보면서, 오늘도 편안한 음악으로 새 아침의 클래식 꾸며드릴게요. <KBS FM 1, 새아침의 클래식, 200778일 방송>

 

2. “인사(1-7)”감사 기도(8-15)”을 읽었습니다. 오늘부터 로마서를 묵상하게 되어서 많이 기쁩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쓴 13편의 서신중에서(사실은 히브리서도 바울 저작으로 보는 학자가 많음), 가장 돋보이는 편지로, 그의 주요 서신중에 하나입니다(주요서신으로 분류되는 것은 갈라디아, 고린도 전서 후서, 그리고 로마서). 신약성서가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 절반이 넘는 저술물들이 바울이라고 할 때, 초대교회 이래로 바울의 위치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예수께 직접 부름을 받은 사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초대 기독교회의 중심인물로 등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은 매우 자연스럽게 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묵상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로마에 있는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바울은 가장 긴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당당하게 자신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예수가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로마에 있는 교회는 신앙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신학적인 면에서도 매우 연약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인사말에서 예수의 두 성품 곧 신성과 인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가장 힘들어 했던 문제였는데, 소위 기독론의 문제를 서두 인사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로마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 잠깐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위 로마 교회는 흔히들 자생교회(自生敎會)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거나 바울 같은 이방을 목표로 한 선교사들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을 가진 이론은, 예루살렘을 왕래하던 사람들(가령 고국을 방문하려거나, 유대인의 3대 명절을 지키기 위해서 방문한 사람들)에 의해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예수 운동을 목격하고 이를 따르고자 세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 디아스포라(유대 외의 타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을 지칭)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라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라는 도시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비록 열악하지만 이 로마교회가 세계 교회를 위한 교두보의 역할을 할 것을 깨우쳤기에 이런 편지를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주요서신에 해당되는 3개 교회에게는, 목회적인 차원보다는 신학적인 차원의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래서 훗날 신학자들은 바울을 신학자로 부를 수 있는 근거를 로마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아무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최초의 기독교회에 자신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열망하는 심정을 피력하고 있습니다(14-15). 우리가 흥미 있게 주목할 말씀은 문명인에게나 미개인에게나, 유식한 사람에게나 무식한 사람에게 똑 같이 전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에 최봉석 목사님(1869-1944)이 있었는데, 자살하러 가는 여인에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쳐서 구원했다는 부흥사들의 일화가 한국 교회가 채택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노방 전도의 패러다임이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열악했던 한국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이라도 로마서에 나타난 전도방식이 기준이어야 할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