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크리스천으로 살아갑시다. / 롬 6:1-11.

박성완 2022. 7. 23. 00:00

묵상자료 7737(2022. 7. 23. 토요일).

시편 시 88:16-18.

찬송 3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산은 때로 어머니처럼 고향처럼, 우리를 널따란 품으로 품어 줍니다. 산을 보면서 고향을 그리는 이들이 많은 이유는 산의 그 넉넉함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보게 됩니다. 오늘 가곡 이야기 신응철 시 신동수 곡 <산아> 준비했습니다. 긴장감이 돌만큼 아름답고도 쓸쓸한 시와 선율이 감정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떠나는 자의 산을 향한 아픈 절규는 바로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요, 생에 대한 뜨거운 애착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산아, 사랑하는 내 고향의 산아, 종내 너를 두고 나는 가누나. 내 마음의 무게이고, 내 넋의 크나 큰 날개여. 두 팔로 내 목을 얼싸 안고, 안타까이 나를 울리는 사람아. 산아, 내 고향의 산아, 잘 있거라. , 내가 죽어서도 돌아올 보금자리여, 어디에 묻혔다가도 되돌아와 묻힐 내 무덤이여, , 눈 익은 멧부리 멧부리여, 살뜰한 골짜기 골짜기여, 언제 돌아온단 기약도 못한 체, 종내 나는 떠나가누나. 잘 있거라, 잘 있거라, 산아, 산아, 사랑하는 내 고향의 산아.”

   가곡 <산아>는 아버지와아들이 함께 만든 곡입니다. 1983년 서울 대학교 음대 작곡과에 재학 중이던 신동수가 아버지가 쓰신 시에 곡을 붙였지요. 아버지인 신응철 시인은 고향인 함경남도 안변의 황룡산을 그리며 시를 썼습니다. 두고 온 고향을 그리는 안타까운 실향민의 심정을 그린 이 곡은, 깊은 서정성이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도, 울부짖듯 격정적인 면이 감도는 노래이지요. 바리톤의 중후한 음성이 특히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716일 방송>

 

2.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1-11)”을 읽었습니다. 초대교회 이래로 기독교는 예배당을 짓고 그 안에 성찬상과 설교대, 그리고 십자가와 세례대 촛불 등도 구비하였습니다. 이런 기물들은 모두 예배를 드리는데 매우 중요한 성물(聖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례에 대한 말씀이 주제로 등장하는데, 세례대는 예배당의 입구에 위치하게 하였고, 예배자들이 드나들 때 마다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서처럼 세례를 받음으로 죄에 대해서는 죽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리신 의로 말미암아 다시 살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오늘 본문이 이런 신학적인 배경을 충분히 암시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예배자가 세례대 앞에 와서 세례대의 물을 손으로 찍어 자신의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리며, 자신은 세례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죄에 죽은 사람이고 그리스도의 의로 다시 새 사람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자존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죄 아래 살면서 죄의 종노릇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죄에서 해방된 참 자유인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세례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에게 죄에 죽고 의에 사는 크리스천의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말씀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9:23) 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하셨던 사도 바울의 말씀은 우리의 세례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평신도는 물론 수십 년을 목회에 진력을 다한 목회자들까지도, 어떻게 사는 것이 크리스천의 삶인지를 묻곤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세례를 기억하며 사는 일보다 더 크리스천다운 삶이란 없다고 대답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죄에 죽는 삶을 사는 일로, 날마다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완벽하게 죄를 이기는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에 거하는 한 죄의 세력을 피해서 딴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정하고 두려운 자리에 서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의 최종 은총인 그리스도의 공로로 일어서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혹은 그리스도를 앞세우고 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삶입니다. 섬기는 삶이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할 때 우리는 작은 그리스도가 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이래로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서 세상 사람들은 크리스천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11:26). 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인 곧 작은 그리스도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