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삶의 출발점. / 롬 9:19-33.
묵상자료 7749호(2022. 8. 4. 목요일).
시편 시 89:38-41.
찬송 47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레로 실을 뽑고 베틀로 옷 짜는 일은, 예전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의생활 수단이었습니다. 겨울 농한기가 되면 아낙들은 물레로 실을 만들어 길쌈 준비를 했지요. 으르렁 으르랑 물레는 늙은 할머니 노리개라 고전 민요도 있는데요. 물레를 노래한 가곡이 있습니다. 김안서 시 김순애 곡 <물레> 민요풍이 가미된 흥겨우면서도 아름다운 곡이지요.
“물레나 바퀴는 실시리 스르렁 어제도 오늘도 흥겨이 돌아도, 사람의 한 생은 시름에 돈다. 물레나 바퀴는 실시리 스르렁 외마디 경마디 실마리 풀려도, 꿈같은 세상 가도세 얽혀, 물레나 바퀴는 실시리 스르렁, 언제나 실마리 감자던 도련님, 언제는 못 풀어 날 잡고 운다오. 물레나 바퀴는 실시리 스르렁, 원수의 도련님 실마리 풀어라. 못 풀 걸 왜 감고 날 다려 풀라나.”
실시리 스르렁 하는 의성어가 정겹게 들려서 장단이라도 맞추고 싶어집니다만, 헌데 내용은 좀 다르지요. 물레나 바퀴는 흥겨이 돌아도, 사람의 한 생은 시름에 돈다는 조금은 염세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레를 통해서 인생을 비추어 보는 묵직한 세계관은, 작곡가 김순애 작곡 스타일을 통해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가 품고 있는 삶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염세적인 고백은, 가족의 납북, 어머니의 죽음, 자신의 병환 등, 작곡가의 진실한 경험과 맞부딪혀서 비로소 살아 있는 멜로디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원래 이 곡 남편과의 갑작스런 이별이 준 아픔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8월 3일 방송>
2. “하나님의 진노와 자비(19-29절)”을 읽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야기인 은총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는 가끔 헷갈리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에 내어 줄 만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그렇게 사랑하는 인생들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느냐는 것이 납득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또 개소리냐고 힐책할지 모르지만, 저는 저의 반려견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우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합니다. 가령 제 아내의 비난처럼 제가 반려견에게 빵이나 간식을 너무 많이 주어서 입버릇을 망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장질환이나 당뇨도 재촉하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이유야 많습니다만, 도무지 먹어야 할 사료보다는 간식을 달라고 투쟁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좋아하니까 그냥 습관처럼 주고 있는데, 늦게라도 버릇을 고쳐보겠다고 사료만을 고집했는데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애교를 부리고 못살게 굴어도 간식을 주지 않다가 마침내 화를 냈습니다. 소리를 쳤고, 효자손을 들어 애먼 소파의 손잡이를 소리 나도록 치는 겁니다. 그러면 저를 아주 낯설다는 듯 쳐다만 볼 뿐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때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지요. 실제로 넓은 엉덩이를 몇 대 내리쳐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죽을 만큼 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지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아무리 궁시렁거려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곤 제 머리맡에서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잠을 청합니다.
주인의 사랑을 확신하는 강아지가 한없이 부럽게 생각되는 아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골고루 몸에 좋은 영양소를 충분히 챙겨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에도 말입니다. 오히려 몸에 해로운 것들을 너무 많이 좋아하는데도 말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곁을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옆집에서 키우는 개는 대형견입니다. 그놈은 제가 가끔 공들여 제공한 고구마 몇 알로 이미 제 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텃밭에 들어서거나 잔디밭을 오가면 담 너머로 지켜보다가 간식을 달라는 눈치를 보이며 뭐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제 강아지는 행여 공격해올 것을 대비해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합니다. 참 고맙고 든든합니다. 아무 힘도 없는 주제에 주인을 지키겠다는 그 성심이 얼마나 기특합니까? 그리고 제 곁에서 맴돌며 말동무도 되고 길동무도 되어 줍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떻게 이 작은 강아지와 비교가 되겠습니까? 사랑의 눈빛으로 지켜보시는 그 모습 말입니다. 사도는 질그릇을 만드는 옹기장이 얘기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들은 옹기장이의 처세와 많이 닮았다고 말입니다. 때로는 귀하게 또 때로는 천하게 여기는 옹기들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옹기들이 쓸모에 알맞도록 만드신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귀한 그릇으로, 또한 천한 그릇으로 만드시는데, 모든 옹기들은 하나님의 필요에 쓸모가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감격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존재들은 하나같이 쓸모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인생관이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쓸모 있다 하시면 가치 있는 삶 아닙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