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하나님의 경륜을 찬양할 이유. / 롬 11:25-36.

박성완 2022. 8. 10. 00:00

묵상자료 7755(2022. 8. 10. 수요일).

시편 시 90:8-10.

찬송 441.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몸짓 사소한 행동에, 이 아이가 혹시 영재가 아닐까? 하면서 한, 번쯤 기대나 미련을 가져보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요? 사랑에 빠질 때도 비슷하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키워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특별하다, 여태까지 만나온 사람과는 다르다. 이렇게 믿으면서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지요. 하지만 결과는 번번이, 이 사람도 다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나곤 합니다. 다를 거라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어쩌면 우리의 삶이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다시 기대하는 과정의 연장선인지는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했다가 조금은 실망하고, 하지만 그래도 하고 다시 믿어주는 과정, 그러한 기대와 믿음이야말로 우리 삶을 맛깔스럽게 하는 조미료 같은 것인지 모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810일 방송>

 

2.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25-35)”을 읽었습니다. 늦깎이로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는데, 무려 일곱 살이나 어린 학우들과 공부를 한 것입니다. 다행히 다음 해 복학생으로 동갑내기들이 들어와서 조금은 긴장을 풀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대부분의 학우들이 저를 형이라고 불렀는데, 훗날 동기 동창이었던 학우가 모교에 교수로 부임했는데, 어느 모임에선가 제게 다가와 옥스퍼드 학술지에 자신의 논문이 게재되었다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 몇 년 후 그 친구가 쉰을 갓 넘긴 나이에 별세를 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준비가 되어있는 좋은 일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간 것입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 질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이지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그런 질문을 품고 있거나 혹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서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깨닫기 힘든 숨은 진리가 있다.”고 말입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의 민족 대표 중에는 시인 한용운이 있습니다. 그의 시들 중에 알 수 없어요.”라는 시는 가끔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인은 강조어법으로 되풀이하는 질문이 나오는데,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누구의 얼굴입니까?”, “누구의 입김입니까?”, “누구의 노래입니까?” 등등 그 누구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해설하는 분들에 의하면 대체로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맥락은 알 수 없어요.”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경륜을 이핸들 할 수 있을까요? 저의 친했던 동기동창이 미국의 하버드를 돌아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학위를 받고, 조국을 위해 일해 보려고 팔을 걷어붙이자마자 모든 것을 멈춰버리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부르신 것이나, 그들이 하나님 보다는 우상에 복종하도록 내버려 두신 것, 엉뚱하게 이방을 구원하시려고 바울을 사도로 세우신 것, 그러면 선민 이스라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실까?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그런데 이를 주목한 바울은 하나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 누가 그 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고 질문 같은 대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깊고 높은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억지소리를 내뱉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내가 본 천국>을 쓴 사람이나, 한국 신약학계의 원로인 아무개 박사도 천국에 다녀온 이야기라며 신파 소설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에 비하면 꿈에 본 천국 장면을 얘기한 고 이상근 박사님의 얘기가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천국에서 내가 평생을 사랑하며 존경하고 따랐던 칼뱅을 보지 못하고, 루터를 본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말입니다. (이 글은 이상근 박사님의 아들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님의 글에서 옮김). 그래서 우리는 헛된 기도 말고, 쓸모 있는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주님, 당신 나라에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3. 폭우 가운데서도 주 안에 평안하시기를 빌며,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