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실한 시간에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눈 이웃. / 롬 13:8-14.
묵상자료 7760호(2022. 8. 15. 월요일).
시편 시 91:4-6.
찬송 2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은 바다에 가있는 8월 입니다. 바다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양주동 시 이 상근 곡 <해곡> 준비 했습니다. 원시의 제목은 <해곡 산장>입니다. 이 곡은 양주동의 시 해곡 산장 중에서 1장과 2장을 따서 작곡한 곡이지요. 우리 가락에 서양적인 느낌을 잘 살려낸 아름다운 곡이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님 실은 배 아니언만 하늘가의 돌아가는 흰 돛을 보면, 까닭 없이 이 마음 그립습니다. 홀로 바닷가에 서서 장산에 지는 해 바라보노라니까. 나도 모르게 밀물이 발을 적시 웁니다. 아침이면은 해 뜨자 바위 위에 굴 캐러 가고요. 저녁이면은 물에서 소라도 줍고요. 물결 없는 밤에는 고기잡이 배타고 달내섬 갔다가, 안 물리면 밥만 싣고 돌아오지요.”
많은 후배 시인들과 작곡가들이 양주동의 시 <해곡 산장>을 애송했었다고 합니다. 작곡가 최영섭 역시도 이 시를 암송했었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바다의 향수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많았다, 뭐 그런 뜻이겠지요. 1940년에 작곡이 됐고, 발표는 이듬해 했습니다. 음악 평단에 주목을 받으면서 작곡가의 이름을 알리기도 했지요. 이상근 선생은 서양식의 찬송가 풍인 노래를 우리 가곡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또 우리 가락과 장단을 그대로 옮겨놓고 우리 가곡이라고 우겨대는 시대로 지났다면서, 한국 작곡가가 아니면 창작할 수 없는 그런 음악이어야만 세계적인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는 지론을 폈습니다. 비록 첫 작품이기는 해도, 작곡가의 그러한 생각이 이 곡에도 담겨 있습니다. 이 짧은 곡 안에 우리의 가락과 현대적인 느낌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을 받았지요. 8.15 해방을 맞아서 이 곡을 교과서에 교육부에서 채택하기도 했었습니다. 시조창에서 오는 담백한 분위기를 차분하게 그려낸 곡 <해곡>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8월 14일 방송>
2. “사랑은 율법의 완성(8-10절)”과 “단정한 처신(11-14절)”을 읽었습니다. 첫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나 그 밖의 율법들을 지키는 것은 그 바탕에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요즘은 함께 나눔이라고 말들 합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그 모든 내용들을 함께 나누는 일 말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이런 함께 하는 것,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됩니다. 누구도 감당하기 힘든 시절이 있을 것입니다. 제게는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10년간이었습니다. 입주 가정교사를 하던 시절에는 거창 창남교회의 성가대원들이 함께 있어주었고, 두어 차례 낙방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땐 부모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군인 교회가 없어서 어느 시골교회 무자격 전도사로 일할 때에는 조병생이란 선배가 함께 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부자 장로가 되어서 제 신학교 뒷바라지를 해 주겠다고 끊임없이 격려해 주었지만, 실제로는 립서비스로 끝나버렸습니다. 그 모든 분들이 저를 사랑해 주신 분들입니다. 함께 곁에 있어준 분들인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는 본문에서 우리가 힘쓸 의무들 중에는 사랑의 의무만큼은 제대로 짊어질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하고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아야 하고, 살인해선 안 되며, 도둑질은 물론 탐내지 말라는 등의 율법은 이웃사랑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이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을 붙였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정의한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우치는 것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평생을 함께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처럼 물리적인 것은 물론, 정신적으로 그리고 이념적으로 함께 하는 이웃을 두기란 어렵다는 말입니다. 많은 이웃들이 제 곁으로 다가 왔다가 하나 둘 떠나갔습니다. 물론 제가 물리친 적도 있었지만요. 거기에는 이해관계도 있었겠지만, 정신적이고 신앙적인 점이 더 많았습니다. 멘토를 요청하던 사람이 1년도 되지 않아 비난자로 바뀌는 것을 보았을 때, 마지막 한 사람으로 남을 것처럼 빈 말을 하던 사람이 결국 다른 사람처럼 돌아서 버릴 때, 단 칼에 자르고 말았습니다. 크게 후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마음으로 거리두기를 해 버린 이웃들도 제법 됩니다. 그냥 날씨 얘기만 하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이웃이란 삶의 순간순간마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사람이면 괜찮은 것이라고 말입니다. 많이 쌓아놓을 그런 물건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험한 세상 어느 길목에서 서로 만나, 위로와 용기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감사할 수 있으면 족하니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헤어진 모든 이웃들도 제겐 귀한 분들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광복 77주년 기념일로, 통일된 조국을 위해 기도합시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