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드보라를 역사의 무대에 세우신 야훼 하나님. / 삿 4:4-23.

박성완 2022. 8. 25. 00:00

묵상자료 7770(2022. 8. 25. 목요일).

시편 시 93:3-5.

찬송 40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똑 같은 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도, 어느 때는 노래를 한다고 하고, 또 어느 때는 운다고 표현을 합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같은 새 소리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지요. 비둘기 울음을 통해서 민족의 수난사를 그린 장병준 시 이효섭 곡 <울음> 준비했습니다.

   “행복의 정화가 울음을 운다. 구구 구구구, 구구 구구. 살랑살랑 지향한 꿈이 아홉 번 끊기어 울음을 운다. 구구 구구구. 구구 구구. 어리는 먹물을 솔바람에 뿌리고, 무릎을 부비며 울음을 운다. 구구 구구 비둘기 울음.”

   구슬픈 비둘기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들릴 것만 같은 그런 곡입니다. 1971년 바리톤 황병덕이 서독에서 독창회를 가질 때 불렀다고 하지요. 슬픈 사연의 노래라고만 착각하고 있는데, 이 노래에 소생의 힘을 담았다고 작곡가는 말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825일 방송>

 

2. “판관 드보라와 그의 장군 바락의 승전(4-23)”을 읽었습니다. 사사 에훗이 일하던 80년은 평온하였습니다. 그런데 에훗을 뒤를 이은 사사 삼갈이 약 1년간 임무를 수행한 후 또 다시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을 가나안 왕 야빈이 철병거를 앞세워 무려 20년이나 괴롭히게 되었습니다(4:1-3). 이때 활동했던 사사가 랍비돗의 아내 드보라로, 그녀는 에브라임 산악지대인 라마와 베델 사이에서 예언자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야빈의 학정에 대해서 백성들의 탄원을 들으시고 드보라를 사사로 부르시고, 납달리 지방의 바룩을 장군으로 삼아, 납달리와 스불론 지파에서 일만 명의 군인을 뽑아 다볼 산에 집결케 하고, 드보라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기손 강으로 유인하여 바룩에게 넘겨주어 공격하는 전략을 세웁니다. 그때 바룩은 드보라가 전투에 참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전쟁을 수행합니다. 드보라는 시스라의 철병거 900대와 바룩의 일만 명 군대가 싸우는 전쟁에는 야훼 하나님께서 앞장서 계심을 선언하였습니다. 철옹석 같았던 시스라의 군대가 자중지란에 빠지도록 만드신 분이 야훼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시스라의 군대는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죽임을 당했는데, 패전을 의식한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피신해 들어갔는데, 야빈과 헤벨 가문은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안심하고 피신처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훼 하나님께서는 헤벨의 아내 야엘로 하여금 시스라를 담요로 감싸 숨겨주었는데, 안심하고 잠든 시스라를 천막 말뚝과 망치로 땅에 박히도록 들이 박아 죽인 것입니다. 그리고 바락이 시스라를 추적해 왔을 때 그를 맞아 시스라의 주검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인간 자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역시도 그런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인간 영웅의 지혜나 용맹 그리고 제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그때서야 하나님을 찾게 되고 탄원이나 원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일이 제 뜻대로 잘 풀릴 때는 자신에게 공을 돌리면서 살아가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시대와 역사를 바르게 관측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이나 우리나라의 정치 풍향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우리들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존재인지를 거듭 깨닫게 됩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귀에 들리는 대로 살아가다가 자신의 덫에 걸려 넘어지는 삶을 사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을 변명하기라도 하듯 새옹지마라는 말을 고사에서 끌어내 위안을 삼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여 사사 드보라는 대단한 인물로 추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생존했던 주전 1,230년대를 감안할 때 말입니다. 우리는 그녀의 배후에 계시는 야훼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의 특출한 예지력을 사람들로 하여금 눈여겨 볼 수 있도록 도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6, 9).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들은 인간적인 두려움 속에서도 강건한 용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선교하던 몽골에 드보라라고 이름하는 통역사가 있었습니다. 루게릭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신실한 모습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