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인격적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 삿 18:21-31.

박성완 2022. 9. 14. 00:00

묵상자료 7790(2022. 9. 14. 수요일).

시편 시 98:1-3.

찬송 3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한 신문에서, 가을 시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와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더군요. 서정주 시 이효섭 곡 국화 옆에서 준비했습니다. 어떤 생명체라도 치열한 생명 창조의 역경을 밟고 태어난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지요. 방황과 역경을 극복하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이의 담담한 성찰이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에 담겨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네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작곡가 이요섭 선생이 이 곡을 작곡한 것은 1953년 광주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가 서울로 돌아온 직후라고 합니다. 어느 날 선생은 늘 하던 대로 명동의 돌체 다방으로 나갔는데요. 당시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성악가 김창섭이 그를 반기면서 며칠 전 신문에 실렸던 미당의 시 <국화 옆에서>를 스크랩해서 내밀었다고 합니다. 작곡을 하라는 권유였지요. 처음에는 사양을 하고 다방을 나왔는데, 집을 향해 걸어가던 사이에 시가 저절로 흘러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날 밤을 새워서 작곡을 했고, 날이 밝자 근처 다방에 가서 마무리를 했던 곡이 바로 이 곡이지요. 이요섭은 그 때의 벅찬 서정을 이후 다시는 맛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작곡가 살아생전에 정작 미당 선생은 이 곡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고 하네요. 가곡 펜들에게 오랫동안 은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914일 방송>

 

2. “미가와 단 지파2(21-31)”을 읽었습니다. 걸출한 장사 삼손과 같은 사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지파는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은, 초기 가나안 정복 과정 혹은 가나안 정착 과정이 얼마나 지난(至難)하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저마다 힘든 생의 여정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만 힘들고 어렵다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매우 편하고 쉽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또 불평합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단 지파는 땅을 차지하기 이전에 무엇이 더 시급한 일인지를 알아낸 듯합니다. 그것은 야훼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개인 미가가 모시고 섬기는 가신(家神)을 빼앗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합니다. 그 정당성은 한 가정의 신으로 섬기는 것 보다는 한 지파의 신으로 섬기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미가가 고용한 레위 제사장을 설득하였고, 신상을 찾으러 뒤쫓아 온 미가도 내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려운 삶을 사노라면 여러 가지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러는 과정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아내기도 하고, 오히려 어깃장을 부리는 바보짓으로 치닫을 수도 있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전자를, 다수의 사람들이 후자를 택하는 것 같습니다. 단 지파의 지도자들은 전자에 해당되었습니다. 모든 일에서 가장 우선적인 일은 야훼 하나님을 안정적으로 섬기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란 결론입니다. 그래서 신상과 제사장을 모두 빼앗은 것입니다.

   마침내 단 지파는 평지인 라이스를 점령하고 그 성읍을 단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빼앗아간 신상을 세우고 모세의 손자인 요나단을 단 지파의 제사장으로 삼고,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 대대로 그 후손들이 제사장노릇을 하게 되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인격적인 존재인 야훼 하나님을 은을 부어 만든 신상으로 생각한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잘못된 일이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성경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불가피한 일이었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기 전의 저의 할머니는 소문난 민간신앙 숭배자였습니다. 그래서 정화수와 촛불을 앞에 두고 새벽마다 자녀들을 위해서 자주 기도하셨다 합니다. 정화수나 촛불은 정성을 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었지 그 자체가 신은 아니었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지금도 여전히 눈에 보이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는 허공을 향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가령 무당들은 뭔가 크고 웅장한 바위나 나무 앞에 제상을 차리고 기도하곤 합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의 크리스천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낭패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이나 성모상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앞에 두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존경심이 넘쳐서 그 성상과 성화를 하나님처럼 섬기게 된다면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현존인 성경 말씀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과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수 있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더 이상 우상화 가능성이 있는 성상과 성화에 집착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이것들은 우리들 신앙을 격려하는 좋은 도구로써만 활용되어야 할 뿐, 하나님의 현존을 말씀에서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