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천국 기행문들(?)의 근거는 지혜서나 묵시서에서. / 욥 2:1-13.

박성완 2022. 9. 16. 00:00

묵상자료 7792(2022. 9. 16. 금요일).

시편 시 98:7-9.

찬송 28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소박하고 풋풋하고 그러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꽃, 청초하고 사랑스러운 꽃 들국화는 가을의 대표 꽃으로 불리지요. 수많은 가을 노래에 들국화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겠습니다. 장수철 시 김대현 곡 <들국화>. 가냘픈 느낌의 서정 적인 선율로 가을의 애수와 그리움을 맛볼 수 있는 곡입니다. 성악가들이 즐겨 부르는 청초한 이미지의 곡입니다. 정감어린 선율이 더욱 진하게 가을을 느끼게 해 줍니다.

   “흰 구름이 떠도는 가을 언덕에//한 떨기 들국화가 피고 있는데/ 남 몰래 사모하기에/ 오늘도 가련하게 구름만 돈다/ 실바람이 불어오는 가을 언덕에/ 말없이 들국화가 피고 있는데/ 그 누구도 안 오는 외로움 속에/ 오늘도 가슴 태워 기다려 본다

   사랑스럽게 부르라는 작곡가의 주문이 있습니다. 1954년 작곡된 곡이고요. <들국화>는 곡의 흐름이 완만해서 변조가 다양해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기에 좋은 곡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따라 부르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작곡가 김대현 선생은 장수철 시인과 친분이 깊었다고 하네요. 아동문학가 이기도 하지요. 장수철 시인이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 좋은 가곡을 보급하자는 뜻으로 작곡가에게 곡을 의뢰했다고 합니다. 작곡가는 곡의 선이 가느다랗고 감정이 섬세한 까닭이 들국화 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한 평론가는 이 곡을 두고서 여인의 옷으로 치면 옥색 치마요, 다른 꽃에 비한다면 애수의 목련화 같은 느낌의 곡이라고 했는데요. 애틋한 감정과 우아한 선율이 아름답게 조화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가을의 정서가 물씬 배어 있는 곡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915일 방송>

 

2. “사탄이 욥을 시험하다2(1-10)”욥의 세 친구(11-13)”을 읽었습니다. 비몽사몽간에 혹은 죽음을 경험했던 사람들에 의해서 천국 여행담이 책으로 또는 간증으로 전파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애써 외면했었는데,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성경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겠다 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천국에서 하나님께서 주재(主宰)하시는 정기적인 모임이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소위 <영들의 회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 하루는 그 회의에 사탄이 끼어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사탄과 욥에 대해서 대화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욥의 신실하심과 올바른 삶을 칭찬하시자, 사탄이 제 의견을 말합니다. 사람이란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면서, 만일 그의 살과 뼈를 치면 장담컨대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맡기며, 무슨 짓을 하던 그의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명합니다. 그렇게 해서 욥은 사탄의 저주를 받아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부스럼으로 고통을 받게 되고, 욥의 아내까지 나서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막말을 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원망하기는커녕 입술로 죄를 범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설교에서 저는 어떤 특정인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야 할 잃은 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욥기의 저자는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어 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각박한 현실에서 소설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욥의 세 친구 이야기입니다. 욥에게는 각기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세 친구가 있었는데, 욥의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그리고 나아마 사람 소바르 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절친 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함께 모여 욥을 위로해 주기로 하고 찾아오는데, 욥의 몰골을 보고 목을 놓아 울면서 겉옷을 찢고 먼지를 머리에 덮어씌우며 7일 동안이나 욥을 바라볼 뿐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참 좋은 친구를 두었다는 생각입니다. 동방의 의인이요 부자인 욥에게는 적어도 3명의 절친이 있었으니 다행중의 다행이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제게 물었습니다. 제자가 몇이나 되느냐고. 그때 저는 예수님에게 12명의 제자가 있었으니 적어도 한 명은 있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친구가 많을수록, 제자가 많을수록 인생 헛살지 않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친구나 제자를 보고 한 사람의 인생을 평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남은 욥의 세 친구마저도 다 떠나갈 날이 올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33:20, 14:10).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