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이 철썩 같이 믿고 있던 하나님. / 욥 14:1-22.
묵상자료 7804호(2022. 9. 28. 수요일).
시편 시 102:8-11.
찬송 414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은 한 권의 책에서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면, 대부분 엄청난 양의 독서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작가가 그런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평생 읽은 서적 중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감명 받은 책이라고 밝혔다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약간의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요. 왜냐하면 전쟁과 평화를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 경험이 뒷받침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의 꾸준한 독서의 경륜의 시작 역시 어쩌면 어린 날, 헌 책방구석에서 찾아낸 낡은 책의 재미에서 시작되었을 거라는 이야기겠지요. 그러한 독서의 경험을 덮어 두고, 단지 한 권의 그 책을 유일한 책으로 꼽은 것은, 어찌 보면 과장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작가는 사람들에게 책을 권할 때, 재미있는 책부터 읽기 시작해 보라는 주문을 합니다. 작은 재미에서 출발하듯, 어떤 일이든 시작은 소박하게, 작은 데서 부터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9월 29일 방송>
2. “욥의 기도2(1-22절)”을 읽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두 번을 읽어도 아마 세 번을 읽어도 욥의 기도에서는 허무한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여인에게서 태어나는 것, 그의 수명은 하루살이와 같은데도, 괴로움으로만 가득차 있습니다.”로 시작합니다. 너무도 고달프기만 한 인생여정을 말하고 있으니, 뻔한 넋두리(?)가 아닙니까? “꽃처럼 피어났다가는 스러지고, 그림자처럼 덧없이 사라집니다.” 이 대목에서는 더 이상 살고 싶은 의욕마저 꺾인 듯합니다. 어제 서점에는 어디로 튈지 모를 철부지 어린애는 물론 저보다 몇 살은 더 돼 보이는 팔십 줄의 노인들도 제법 보였습니다. 그래서 겸연쩍지가 않았습니다. 때늦은 배움도 설레긴 마찬가지니 말입니다. 꽃 같고 그림자 같고 하루살이 같은 인간, 그런 사람을 법정에 소환하고 따지고 있는 하나님, 며칠이나 몇 달이나 살지 말지 한 인간을 주목해 보시는 하나님을 욥은 찬찬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무는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는 기도에서는 눈물이 맺혔습니다. 날카로운 도끼에 찍힌 나무, 뿌리마저 흙속에서 죽었었는데, 물기만 있으면 움이 다시 돋아 어린 나무처럼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 부러워하는 대목에서는,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자랑스럽다 하신 우리 인간은 한번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고, 한번 든 잠에서는 깨어 일어나지 못한다고 탄식합니다. 참 보잘 것 없는 우리들 인생입니다.
그런데 저는 욥의 기도에서 크게 느낀 것도 많고 깨우친 것도 많습니다. 그것은 이런 이름 모를 나무보다 못해 뵈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욥은 인간에 대해서 잔소리하시고 마침내 분노까지 터트리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신기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묻는 듯합니다. “나의 허물을 모르는 체하여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나의 죄악을 모두 지워 주실 수는 없으십니까?”하고 말입니다. 욥은 하나님 존전에서 자신이 허물 많고 죄 많은 존재인 것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만은, 인간을 만드시고 자랑스러워하셨던 하나님만은 인간의 허물을 눈감아 주고, 하얗게 지우개로 싹싹 지워주실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놀랍게도 욥은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구원행동이었습니다. 욥은 너무도 당당하게 인간의 허물과 죄악을 한꺼번에 치워버릴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촉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였던 것입니다. 우리를 시시콜콜 따라다니며 잔소리하고 회초리를 내리치며 심지어 몽둥이찜질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눈길과 손길의 의미를 말입니다. 욥은 그런 하나님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스럽기 때문에나, 자랑스럽게 살기 때문에 은총을 베푸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3. 어제는 교보에 들려 이태준의 <문장 강화>를 구입했습니다. 금년 들어 글쓰기에 관한 책들만 10권쯤 산 것 같습니다. 이 나이에 무슨 글쓰기냐고 할 분이 계십니까? 유학(儒學)에서는 우리 인생을 학생(學生)으로 일컫는데, 이 책을 통해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크게 뉘우치고 있는 중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