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죽을 각오로 살면 누구나 얻을 삶의 맛. / 에 4:1-17.

박성완 2022. 10. 18. 19:49

묵상자료 7823(2022. 10. 17. 월요일).

시편 시 104:24-26.

찬송 3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시인이 음악가를 꿈꾸는 학생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코트 주머니에서 술병을 꺼내 들면서 문득 생각난 듯이 시를 한 수 읊을 테니 적어 보라고 했지요. 시 한 줄 읊고 술을 들이키고, 학생의 재촉을 듣고 또 시 한 줄을 마주 읊고, 바다를 벗 삼아 또 술을 한 잔, 이렇게 완성된 곡이 조병화 시에 최영섭이 곡을 붙인 <추억>입니다.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하루 이틀 사흘. 여름가고 가을가고, 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 사라진 이 바다에, , 이 바다에.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 앞 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 나흘 닷새 엿새, 여름가고 가을가고, 나물 캐는 처녀의 무리 사라진 겨울, 이 산에, , 이 산에.”

    조병화 시 <추억>은 하나의 시에 김성태, 최영섭 곡 이렇게 두 개의 다른 곡이 존재합니다. 대중에게 익숙한 곡은 김성태의 곡입니다만, 음악가를 꿈꾸던 학생이었던 최영섭의 곡 역시 나름의 멋이 느껴지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017일 방송>

 

2. “모르드개가 에스더와 내통하다(1-17)”을 읽었습니다. 한동안은 제 블러그에 악풀이 가끔 달렸는데, 주로 구원파라는 단어가 쓰일 때였습니다. 요즘은 댓글을 다는 이들도 정치 얘기가 아닌 다음에는 비교적 칭찬성 말들을 골라 쓰는 것 같습니다. 정치가나 목사처럼 레토릭(rhetoric)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얘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가기를 희망하는 것이지요. 저는 제 자신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그런 유체이탈에 버금가는 허무맹랑한 말이나, 시대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는 말들을 참을 수 없어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청중이나 독자의 호불호를 떠나서, 제 자신이 감동하고 만족스러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우리는 링컨의 시대나 처칠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며 오바마의 시대 환경과도 다른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레토릭, 설득의 기술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이 단어가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누군가에게서 행복하냐고 묻는 질문에 매일 너무 중요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하고, 그 힘든 일을 종일 생각하지만 결국 풀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그 누군가는 저의 껌딱지인 애완견 순진이와 여을이었습니다. 총리대신 하만은 유대인을 다 살해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20세기 독일의 히틀러가 하만에게서 그 힌트를 얻었는지 모릅니다. 하만은 정세에 어두운 왕의 눈을 가린체 결재를 받아 유대민족을 합법적으로 멸할 권한을 부여받습니다(3:7-15). 그렇게 해서 거사 날짜까지 정해진 것입니다. 아하수에로 왕 재위 121213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절체절명의 순간에 에스더와 모르드개 사이에 있었던 내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을 처단하려는 합법적인 어명은 나라 전국에 알려졌습니다. 모르드개는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을 하며 실성한 사람처럼 거리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양부 모르드개의 기행(奇行)을 통해 자기 민족 앞에 닥쳐오고 있는 검은 구름을 알게 되고, 모르드개의 전략을 듣게 됩니다. 그것은 정공법을 택하는 것인데, 왕 앞에 직접 나아가서 문제를 직소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왕의 소명 없이는 왕께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주저할 때, 모르드개는 궁 안에서 혼자 살아남는다고 사는 것이 아니며, 다른 방도로 민족이 살게 되면 어찌 얼굴을 들고 살겠느냐고 질책을 합니다. 그래서 에스터는 자신의 민족을 모두 모으게 하고 사흘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도록 부탁합니다. 그리고 법을 어겨서라도 죽을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가겠다고 결심을 밝힙니다. 안이숙 여사가 쓴 책 <죽으면 죽으리라>의 책이 바로 에스더의 결심하는 말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을 각오를 가지기만 하면, 어떤 두려움이나 어떤 어려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죽을 각오를 가졌던 우리 선각자들 때문에 오늘 우리는 말도 이름도 제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각오가 없이는 어느 누구도 인생의 참맛을 누릴 수 없을지 모르겠습니다.

 

3. 토요일 자정에야 저의 인터넷이 카카오 화재로 먹통이 된것을 알았습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와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묵상식구 여러분들께 걱정을 드려서 미안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