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산지석으로 삼을 역사적 교훈들. / 에 7:1-10.
묵상자료 7826호(2022. 10. 20. 목요일).
시편 시 104:33-35.
찬송 53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세기 말,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양 음악은, 우리 민족 정서와 어우러져서 한국화된 클래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주로 시인들의 시에 곡을 입힌 곡들이었고, 곡의 분위기도 조금은 쓸쓸하면서도 서정적인 작품이 많이 있었지요. 이제 소개해 드릴 곡 역시 그 당시 발표된 곡입니다. 박목월의 시에 김성태 선생이 곡을 붙인 <이별의 노래>입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박목월 시인과 이 곡의 작곡가인 김성태 선생은 남다른 친분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이곡 <이별의 노래>는 한국 전쟁 중에 공군 정훈 음악대 소속으로 있던 김성태 선생이 박목월 시인이 시를 적어 직접 전해 준 쪽지를 받고 지은 곡이라고 합니다. 시를 읽은 이후에 감동에 겨워서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골에서 촛불을 켜 놓고. 오선지도 없이 쓴 곡이라는 비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0월 20일 방송>
2. “하만이 몰락하다(1-10절)”을 읽었습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몰라도 “고난은 길고 행복은 짧다.”란 말이 있습니다. 기쁨이나 행복을 얘기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어선지 한 두 마디 말로 충분한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비해서 불행의 얘기들은 구구절절 길기도 합니다. 이번 카카오 데이터베이스 화재 사건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메일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였습니다. 생명의 양식을 먹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서 말입니다. 그런데 날씨 알림, 티스토리에 이어서 메일까지 해결되었는데, 이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한참동안 캄캄한 구름 속을 날던 비행기가 밝은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빠져나올 때의 기분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당연한 듯 더 이상 지속되지를 않습니다. “아, 밝고 좋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렇습니다. 고통의 시간은 지루하고 길고 아프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매우 매우 짧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뇌리 속에는 행복의 시간들은 남아 있지 않고 불행한 세월들로만 가득 찬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깨달아야 합니다. 행복의 순간들은 불행한 세월들보다 훨씬 더 많이 채워져 있으니 감사하는 게 맞다고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제목부터가 통쾌 상쾌 유쾌합니다. 최고의 권력을 행세하며 거만을 떨던 하만이 몰락하다니 말입니다. 억울한 일을 많이 겪어본 사람이라면, 악행 하는 자들이 형통하게 사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 화살을 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그 통쾌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런 마음 밑바닥에는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세속적 야망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합법을 가장하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찬탈하던 자들, 비굴하게 굴면서까지 재화를 긁어모으던 자들이 하만처럼 역전되는 날이 온다는 말입니다. 이를 현세적 심판이라고 부릅니다. 불의하고 부정한 삶을 사는데 어찌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권세나 재력에서 위안을 받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은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그런 권세와 야망에 도전하지 않도록 기회조차 주시지 않을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의 중국 선교 멘토로 수고하셨던 현지 목사님께서 한국을 방문 중인데, 사모께서 중병을 얻어 진료를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바울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자고(自高)하지 않도록 중병을 주셨다 고백하였으니 말입니다(고후 12:7-10). 흔히 학자들은 이를 두고 안질, 치질, 간질이라고 합니다. 요즘도 난치병인데 바울 시대에는 어떠했을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