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더 큰 절망에 휩싸일 때. / 에 9:1-32.
묵상자료 7828호(2022. 10. 22. 토요일).
시편 시 105:4-6.
찬송 7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채동선은 영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는 곡의 노랫말을 선택할 때, 까다롭기로 유명했다고 하지요. 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과 <내 마음>은 각각 김영랑과 김동명의 시에 곡을 붙인 곡입니다. 작곡가 채동선 노랫말에 대한 관심 중에서 남다른 사연이 엿보이는 곡이 있습니다. 이은상 시 <그리워> 라는 곡이지요. 함께 만나보시겠습니다.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 님은 아니 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붙일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 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에는 그대 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채동선의 이 곡은 정지용 시의 <고향>, 박화목 시의 <망향>, 이은상 시의 <그리워> 이렇게 세 가곡의 선율이 같이 되어 있습니다. 원래는 정지용 시에 <고향>에 곡을 붙였지요. 하지만 월북 문인이라는 낙인이 찍히자 <고향>이라는 가사가 금지되자, 박화목 시의 <망향>으로 개사가 돼서 불렸습니다. 후에 채동선의 유족들이 이은상 시인에게 다시 가사를 의뢰하면서, 이은상 시의 <그리워>가 탄생을 했지요. 당시 민족적 울분과 애국을 노래로써 표현을 한 곡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0월 22일 방송>
2. “부림절을 지키다(1-32절)”을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이곳 아산 은행나무 길을 강아지와 산책을 나섰는데, 관광버스가 몇 대 주차해 있었고, 평소보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고수부지에 백일홍을 심어 두었는데, 그 꽃이 만개한 것입니다. 천변을 따라 걷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인데, 꽃까지 눈이 시도록 감상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제 강조해 마지않았던 유대인의 부림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바벨론의 한 성읍이요, 바사의 수도가 되었던 수산성은 백합화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 지역에 백합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고 하며, 헬라인들은 수사성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시련의 민족 유대인들이 전체가 죽임을 당할 뻔 한 아달월 14일은 하만의 계략을 알아차린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의 청원으로 하만의 열 아들과 수사성에 거하는 하만의 무리들 500명이 일시에 죽었으며, 바사 각 지방에 거하는 하만의 무리들이 무려 75,000명이나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이때의 사건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는 모든 유대인들로 하여금 이 사건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도록 아달월 15일에 축일로 삼고, 즐거운 잔치를 열뿐 아니라,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펴는 날로 삼도록 전통을 세웠던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을 기뻐하는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제가 크게 신세를 진 한 지인이 수술을 받고 위경에 처했다며, 제게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날 밤 저는 엘리 위젤의 대표작인 <흑야>를 녹음하였습니다. 엘리 위젤이 노벨 문학상을 받기 6년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기도회가 끝나는 대로 달려가서 기도를 드린 후 그 녹음테이프를 전한 일이 생각났습니다. 1944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엘리 위젤은 손목에 A-7713이란 죄수번호가 새겨졌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요? 그때의 심정을 표현한 가장 적절한 말이 “검은 밤”이었을 것입니다. 성지 순례를 다녀온 어느 분은 유대 광야에서 큰 깨우침을 받았는데, 돌과 모래뿐인 끝도 없는 사막 한 복판에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기도가 무엇인지 조금은 눈뜰 것입니다. 그래서 위젤의 <흑야>를 들려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목표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희망이 절망이 되고, 또 절망에서 더 큰 절망으로 몰리게 될 때, “하나님, 저는 아무 것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이런 기도가 중얼거려질 것이라고 말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말씀들이 제대로 들릴 리 없으며, 절망 한복판에 서게 될 때 “내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 서로다.” 라고 기도할 것입니다.
3. 오늘 오전엔 고등학교 시절 동문수학했던 친구 4명이 저를 찾아온다 해서 마음이 분주합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