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지향점(指向點)이 다른 오늘의 교회. / 눅 5:27-39.

박성완 2022. 10. 26. 00:00

묵상자료 7832(2022. 10. 26. 수요일).

시편 시 105:17-19.

찬송 48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음악가들의 작품,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구전되어 오는 것들 중에서 가장 많은 것, 자장가가 아닐까 합니다. 슈베르트, 모차르트, 브람스 역시, 후세에 자장가를 남겼지요언젠가 열렸던 세계 자장가 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이, 구전 자장가를 불렀던 우리나라의 평범한 할머니였다는 사실, 아시는 분 많지 않을 겁니다. 서구의 자장가에 비해서 유려한 멜로디는 아닐지 몰라도, 잔잔하고 아늑한 그 선율에 아이들은 누구보다도 빨리 잠이 들었다고 하지요. 그러한 우리의 자장가 중에 김영일 시 김대현의 곡이 있습니다.

    “우리아기 착한 아기, 소록소록 잠들라. 하늘나라 아기별도 엄마 품에 잠든다. 둥둥하기 잠자거라, 예쁜 아기 자 장. 우리 아기 금동하기, 고요고요 잠잔다. 바둑이도 짖지 마라. 곱실하기 잠깰라. 오색 꿈을 담뿍 안고, 아침까지 자 장.”

    서정적이고 애조 어린 선율의 작품을 많이 남긴 작곡가입니다. 김대현 선생은 해방 이후에 고향인 흥남으로 가 지내게 되는데요. 동네 청년들이 소인극을 한다고 하기에 연습장면을 구경하러 갑니다. 그는 독립군이 주인공인 그 작은 연극의 완성을 도와주게 되었고요. 훗날 새로 노랫말이 붙여 유명하게 된 김대현의 자장가 이 멜로디는, 이 당시 동네 청년들이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게 된 연극의 여자 주인공이 부르는 메인 테마였습니다. 이후 소프라노 이 관옥에 의해서 자주 불려지고, 한국 가곡집에 실려 출판되면서 본격적으로 빛을 보게 되었지요. 김대현 선생은 생전에 4곡의 자장가를 작곡했습니다. 자장가 외에도 오페라 <콩쥐팥쥐>, <교향시곡>, <광복 10> , 인상적인 작품을 많이 작곡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026일 방송>

 

2. “레위를 부르심(27-32)”단식에 대한 질문(33-39)”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는데,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기용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보니까 적임자로는 부족하더라도 측근을 기용하게 되는 경향이 있어서 일을 그르치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고르셨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세관에 앉아있는 세리인 알패오의 아들 레위 마태를 부르시는 일화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공관복음서 모두에 기록되고 있는데(9:9-13, 2:13-17), 이를 재구성해 보면 그는 레위 또는 마태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직업은 세리였으며, 제자가 되기 전에 자신의 집에 동료들과 함께 예수님을 초대한 인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 외에 그의 이름이 전체 제자들의 명단이 있는 곳(6:7-13, 10:2-15, 9:1-6) 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레위를 제자로 부르신 것은 그의 빠른 셈이나 철저하게 기록 보존하는 재능을 아셨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작 예수님 일행의 회계 책임자는 그가 아니라 가룟인 유다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레위의 재능을 보고 그를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 역시, 우리의 장점이나 능력 때문일 것이라는 자만심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리새파와 율법사들의 사람을 평가하는 견해와 예수님의 견해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세리 마태의 집에 초대받으신 예수님을 향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느냐?”고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원이 필요하지 않고, 병든 사람에게 필요하듯,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놀랍게도 질문과 대답이 서로 잘 어울리는 명문명답(名問名答)처럼 들리지 않습니까? 이 대화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분명하게 밝히고 계시다는 점을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 크리스천이나 교회의 존재의의를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서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오신 주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 사회가 가난하고 중병에 걸려야 하겠다는 그런 망측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건강한 사람에게 더 건강하기를 빌어 주고, 부자인 사람들에게 더 부자 되기를 빌어주는 교회가 되어버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주셨다면, 가령 건강이나 능력이나 재물을 주셨다면, 그 참된 뜻은 약한 사람들을 부축해 주라는 의미이며, 무지한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의미인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명하신 것인데, 아직도 그 말씀의 진의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많이 가슴이 아픈 요즘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