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 신앙생활이 아니면 헛 것이다. / 눅 6:41-49.
묵상자료 7837호(2022. 10. 31. 월요일).
시편 시 105:33-35.
찬송 48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마음을 다해 붙잡는 것들, 모두가 빌려온 것이고 내 것이라곤 전혀 없어요. 예수께서 단지
내가그것을 사용하도록 허락하셨을 뿐입니다. 내 삶을 밝히라고. 그러니 주님 나로 이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때때로
추억의 커튼을 걷을 때 보여주소서. 주님께서 나를 어디로부터 이끄셨는지,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기억해 주소서.
나는 연약한 인간이라 잘 잊어버려요. 그러니 주님 나로 잊어버리지 않게 하소서.
내가 행한 모든 것들 하나님 독생자를 받을 자격 없어요. 난 주님의 손에 상처를 받을 만한 자격이 없어요. 그러나
주님께서 내 대신 죽기위해 갈보리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왜 주님께서 날 사랑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어요. 때때로
추억의 커튼을 걷을 때 보여 주소서. 주님께서 나를 어디로부터 이끄셨는지,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기억해 주소서.
나는 연약한 인간이라 잘 잊어버려요. 그러니 주님 나로 잊지 말게 하소서.”
복음성가 <Remind me dear Lord>에서 옮김. ***구글에서 Terry Blackwood의 노래를 들으실 수 있습니다.
2.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안다(41-45절)”과 “말씀을 듣고 실행하라(46-49절)”을 읽었습니다. 지난 6일 국민일보가 “리(Re)처치, 세상 속으로”를 주제로 개최한 <국민미션포럼>에 어느 교회 목회자 청빙공고가 나왔는데, “예수 잘 믿는 목사님”을 구한다는 웃픈 현실도 소개됐다 합니다. 문제는 우리 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천주교인들에게서 많이 배워야 하겠습니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라는 깨달음 말입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더욱 더 분명해졌습니다. 저는 좋은 나무가 되자는 쪽에 방점을 두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때론 조금 더딜지라도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설령 좋은 열매를 자기 당대에 맺지 못하더라도 후세에는 반드시 맺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엔 거짓으로 열매를 위장하는 기술이 발달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 말씀처럼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무화과와 포도 열매를 맺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고향을 지키는 형제자매는 물론 오랫동안 얼굴조차 볼 수 없었던 고종 사촌들 그리고 이종 사촌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같은 크리스천이어서 언제든 기도할 수 있고 찬송을 부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랐습니다. 저의 가문의 크리스천 1세대는 저의 부모님이십니다.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은 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잘 극복하고 순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30년 만에 만난 이종 사촌형은 사우디에 근로자로 몇 년을 다녀온 후, 고향 교회가 새 교회당을 신축할 때 집을 팔아 헌금했다 합니다. 그런데 몇 년 후에 더 좋은 집을 지어서 살고 계십니다. 요즘 세상에는 보기 힘든 장로님입니다. 왜 그리 무모하고 충동적이었느냐는 물음에, 하나님께서 좋은 기술과 일할 기회를 주신 게 너무 감사했다고 합니다. 그 마음으로 지금도 살고 있다며 밝게 살고 계셨습니다.
둘째 단락은 주님의 꾸중으로 시작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하면서 어찌하여 내 말을 실행하지 않느냐?” 고 말입니다. 옛날도 지금처럼 귀만 가진 교인들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아멘 소리를 크게 외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멘이 요술방망이라고 착각하는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을 듣는 사람의 모습을 자세히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란 땅을 깊이 파서 반석을 놓고 그 위에 집의 기둥을 세우는 사람처럼, 주님의 말씀을 자기 삶의 기초석으로 삼고 자신의 인생 탑을 쌓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야 어떤 시련과 역경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 인생의 탑을 쌓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잘 알고 있는 듯 줄줄 외웁니다만, 실상은 여전히 자신이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잘 들어 알고 외우기까지 하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그의 삶에 부재(不在)할 수 있는가? 물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말씀을 듣고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여러 해 전에 <좋은 생각 통장>을 만들어 활용한다고 소개했었습니다. 좋은 생각을 실천하려고 하니까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곤 했는데, 기쁜 일 감사한 일이 생기면 <좋은 생각 통장>에 조금씩 입금을 해두니까, 언제든지 좋은 생각이 들 때면 곧바로 실천할 수 있더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듣고 통장을 만들었다는 묵상식구가 있었습니다. 참 기뻤습니다. 실천하는 신앙생활, 행동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3. 오늘은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일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