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치를 가진 도박인 믿음. / 눅 7:18-35.
묵상자료 7839호(2022. 11. 2. 수요일).
시편 시 105:39-42.
찬송 9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디언들이 사람 이름만이 아니라, 각 달(月)들에도 저마다 특이한 이름을 붙인다는 것 잘 알고 계시지요. 11월을 가리키는 그 인디언들의 이름들에는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샛강 가장 자리가 어느 달”, “서리 내리는 달”, 이렇게 우리의 계절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또 “물물교환 하는 달”, “지난달과 별 차이 없는 달”, 이렇게 조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름들도 있는데요. 이렇게 다른 사람은 들어서 잘 알 수 없는 나만의 달 이름을 11월에 붙여 주면서 11월을 시작을 해도 좋을 듯싶습니다. 갈수록 텅 비어서 쓸쓸해진다고, “아무 것도 없는 달” 이라고 불리우는 11월을 위해서, 마음 안에는 더 많은 따뜻한 것들을 준비했으면 싶은 11월의 첫날입니다.
<KBS FM 1, FM가정음악, 2007년 11월 1일 방송>
2. “세례자 요한이 보낸 사람들(18-25절)”과 “세례자 요한에 대한 예수의 증언(26-35절)”을 읽었습니다. 첫 단락은 세례자 요한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하는 내용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에 관한 한 인간만큼 잘 흔들리는 존재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만큼 믿음의 근거가 희박한 때문입니다. 자신의 전 생애를 몽땅 내 걸고 믿음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을 성경에서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습니다만, 누구보다도 세례자 요한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가 전부 예수 그 분에게 던져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 세례자 요한도 그의 믿음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 제자를 불러서 예수님을 방문해서 확인해 오라고 명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그토록 확신하고 있던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 분’이 예수님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고 말입니다. 이런 믿음이 깨지게 될 때 가룟인 유다가 되기도 하고, 디두모라는 별명을 가진 도마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 생애를 투자한 사람들의 믿음이 이렇게 흔들리거든 하물며 전혀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충만하다고 하니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한 묵상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슬프게도 믿음의 근거는 주님의 말씀이외에 달리 찾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이라 말씀하시니까 그리 믿는 것입니다. 애를 태우며 궁금해 하는 요한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듣고 본대로 전하라. 소경이 보고 절름발이가 바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고 말입니다. 기적은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이런 정도의 기적이야기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단락은 요한의 제자들이 다녀간 후에 주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광야로 몰려가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고 물으신 후, 흔해빠진 갈대나 사람 구경이나 옷 잘 입은 여인이 아니라며, 예언자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을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까지 하십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말을 인용합니다. 광야의 소리꾼으로 주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의 회개의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평범한 백성들과 죄 많은 세리들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는 사람들 바리새파 사람이나 율법학자들은 세례를 받지 않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장터의 떠돌이 각설이 품바의 노래와 춤을 들으면서도 전혀 감각이 없다고 말입니다. 오히려 세례자 요한이 금욕적인 삶을 살 때도, 예수 당신이 즐겨먹고 사람들과 어울릴 때도, 오직 비난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말입니다. 모두가 믿음 세대가 앓고 있는 진통일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믿음이 없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아픔들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물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결혼 전에는 침례도 받고 신앙생활 잘 하던 여인이 딸만 넷을 낳고 식구들의 등쌀(성화)에 불공을 드리게 되었고 그런 다음 아들을 낳았습니다. 성경구절 인용은 물론 기도도 찬송도 불가한 주례를 부탁받고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신부가 목사의 주례를 고집한 때문입니다. 찬송만 빼고 목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불공을 드려 얻었다 생각한 그 아들이 복음가를 부르며 특송을 하였을 때,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구나 생각했습니다. 믿음은 매우 허약합니다. 그래서 마구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허락된 것입니다(엡 2:8). 우리의 의지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파스칼은 주님을 구주로 믿은 믿음은 도박과 같은 것이나, 무한한 가치를 가진 도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이니 하나님을 더욱 더 의지할 일이며, 믿음의 주를 감사하고 찬양할 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