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 눅 15:1-10.
묵상자료 7846호(2022. 11. 9. 수요일).
시편 시 106:15-18.
찬송 210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곡이 하나의 음악 장르로 뚜렷하게 인정받는 시기는,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찬송가 배급이 이루어졌던 그 때와 맞물리곤 합니다. 이후 우리 가곡은 홍난파의 봉선화를 시작으로, 많은 발전기와 과도기를 거쳐 지금의 현대 가곡으로 자리를 잡아 왔지요. 해방 후 우리 가곡이 국민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서, 대한의 노래, 건국의 노래 같은 국민 가요풍과 같은 노래로 명맥을 이어 나갔다면, 1950년대 즈음에는 한국 전쟁으로 민족 비극의 상처와 비애를 담은 노래들이 발표 됐습니다. 작곡가 이호섭의 <울음> 역시, 그 시기의 작품 중 하나입니다.
“행복의 정화가 울음을 운다. 구구 구구. 살랑살랑 희한한 꿈이 아홉 번 끊기어 울음을 운다. 구구 구구. 어리는 먹물을 솔바람에 뿌리고, 무릎을 부비며 울음을 운다. 구구 구구. 비둘기 울음.”
같은 새의 지저귐을 듣고도 서양 사람들은 노래한다고 하고, 동양 사람들은 운다고 했지요. 듣는 이의 감정이나 살아온 처지에 따라서 표현하는 것이 달랐던 탓일 겁니다. 이 곡 <울음>을 들으면서 곡에 담긴 감성이 바로 그 동양의 우는 새의 정서를 잘 담아낸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울면서 고통을 견디어 내는 산비둘기를 통해서 피맺힌 민족의 사연, 그 고난을 이겨내려고 하는 우리의 끈질긴 생명력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작곡가 이호섭이 광주 국악원에 나가 국악 연구를 하던 때, 시인 장병준을 만나 그의 시를 읽은 상념을 담아 낸 곡이 바로 이 곡 울음입니다. 곡에서 비둘기 우는 소리를 표현한 구음이, 마치 오열처럼 느껴지기도 하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1월 9일 방송>
2. “잃었던 양 한 마리(1-10절)”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든 소설을 읽을 때든, 중심 주제가 무엇인지를 시종일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자고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판에 그대로 둔 채, 온 정신을 그 한 마리에 쏟았다고 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이 말씀을 들을 때는 아찔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비탈지고 굽이진 고갯길을 지나가다가 만난 한 떼의 양무리를 보고서야 염려했던 모든 의문들이 풀렸습니다. 그 양무리들은 앞에서 지팡이를 어깨에 메고 가는 목자와 양무리의 뒤를 따르는 또 다른 목자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들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입니다. 이처럼 성경을 읽는 현대의 독자들에게는 해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것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말씀하는 중심 주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백 마리 양들에 대한 목자의 사랑은 한결같다는 점이며, 특별히 잃어버린 양이 생길 경우에는 그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목자는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수고한다는 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잃었던 양을 찾았을 때는 평범했던 일상이 갑자기 큰 기쁨의 축제로 바뀌게 된다는 점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회개하는 한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이 말씀을 꺼내셨음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니까 회개의 기쁨과 축복을 경험하지 못한 아흔아홉 마리에 해당되는 사람들에 비해서, 잘못된 삶을 살았던 한 사람의 극적인 역전의 삶이 훨씬 더 감격스럽다고 말입니다.
소위 <잃은 양의 비유>는 주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하시는 것을 지켜본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못 마땅해 하는 것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하며 영적인 자만에 빠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법적으로나 공개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적 혹은 영적 자만에 빠져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매 주일 설교단에 오르는 목사라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을 “저는 잃어버린 양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주님께서 우리들이 사는 이곳에 오신다면 불쾌해 하고 분개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들추어내실 게 틀림없으니 말입니다. 제가 예수 역으로 출연한 <예수 서울에 오시다>란 가장 행렬은 1971년도 연세대학 창립 85주년 행사에 출품되었는데, 한국의 신 구교 교회 지도자들이 합심해서 예수 역할을 하는 저를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 일본으로 보내버리는 촌극이었습니다. <굿 네이버스>를 설립한 이 일하 침례교 목사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도 하였습니다. 회개의 기쁨은 회개하는 당사자보다도 하나님께서 훨씬 더 기뻐하시는 일이며, 잃었던 양보다 목자가 더 기뻐하는 일이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