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은 무엇이고,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 눅 20:41-21:4.
묵상자료 7869호(2022. 12. 2. 금요일).
시편 시 108:1-4.
찬송 302, 69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루하루 매일 써 가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보는 일기는 좋은 기록이 되지요. 오랜 다시 꺼내 보는 것으로 그 때 그 나이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가, 어떠한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대학교 때 일기에서 이런 내용을 봤습니다.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시간이 수십 년쯤 지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이지요. 그 때에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문득 내 모습이 어떤가 돌아보게 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그 때 꿈꾸었던 10여년의 모습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대견하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기도 하고요. 이제 알 수 없는 큰 미래의 큰 희망을 거는 혈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과거의 나를 보면서, 지금 충실히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게 되었지요. 남은 시간들 더욱 더 기운내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년 12월 2일 방송>
2. “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인가?(41-44절)”,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45-47절)” 그리고 “과부의 헌금(21:1-4)”을 읽었습니다. 세 단락 모두 때와 장소가 서로 다른 일화들입니다. 오늘 묵상은 셋째 단락 “과부의 헌금”에 대해서 묵상하려고 합니다. 헌금에 관한 논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헌금 문제가 뜨거운 주제가 되었음을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한 때 한국 개신교회당 벽면에는 여러 종류의 그래프가 그려진 통계자료가 붙어 있었습니다. 가장 흔했던 것은 출석현황을 알리는 내용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헌금현황을 알리는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건축헌금이나 성미헌금이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맨 밑에는 헌금자의 이름이 적혀 있고, 막대그래프는 출석 현황이나 헌금 액수를 표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막대그래프가 높이 올라갈수록 고액 헌금자인 것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런 비슷한 공시(公示)가 있거나 아니면 교회 대표가 구두로 알리는 형식이 있거나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예수님은 헌금 궤에 헌금하는 모습을 관찰하신 내용을 말씀자료로 삼으신 것입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부자가 넣은 헌금은 “돈”이라고 하셨고, 과부가 넣은 헌금은 “동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과부의 동전 두 닢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고 평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은 부자가 넣은 “돈”을 “봉헌물, 혹은 예물”이란 의미의 δωρα(도라, δωρον)을 쓰고 있고, “동전 두 닢”은 “가볍거나 작은 동전”을 의미하는 λεπτος(렙토스)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의 헌금은 예물에 해당될 정도의 많은 돈을 암시하고 있고, 과부의 헌금은 보잘 것 없는 우리 돈 “일원”짜리 동전 정도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헌금에 대한 평가는 혹평처럼 들린다 하겠습니다.
우리는 헌금에 관해서 여전히 뜨거운 감자처럼 생각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헌금의 특수성 때문에 어떤 교파에서는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 입출금을 알고 있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헌금이 무엇인가? 헌금은 왜 공공성을 가져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에 성실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제가 후원자로 있는 <교회개혁 실천 연대>라는 곳이 있는데, 이 단체는 헌금의 올바른 관리를 위해서 교회 정관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유독 헌금의 공공성에 대해서 스스로를 감시할 뿐 아니라, 소위 대형교회들의 행태에 대해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제 넘는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자행되고 있는 온갖 비리를 바로잡고,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한 역할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표시로 드리는 예물을 의미합니다. 유목 농경사회에서는 유통되는 재화가 물건이었기에 소나 양 그리고 곡물이 예물이 되었으나, 사회가 차츰 복잡해 지고 발전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도 화폐로 대치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헌금 교육이 당연히 필요하며, 그렇다고 강요할 성격은 아닙니다. 자원해서 기쁜 마음으로 드리도록 가르쳐야 했고, 교회가 신뢰할 만한 사람을 뽑아서 이를 관리하지만, 전체 교회가 다 알 수 있도록 공개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교회 분위기라면 오늘의 말씀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부자는 많은 액수의 돈을 헌금했지만, 과부가 드린 작은 액수의 헌금과는 달랐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써 헌금 내용이 차이가 컸다는 말입니다.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제대로 반응하였으나 부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