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금년 성탄절에는 누구를 찾아가시렵니까? / 눅 21:29-38.

박성완 2022. 12. 6. 00:00

묵상자료 7873(2022. 12. 6. 화요일).

시편 시 109:1-3.

찬송 114.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에 서양 음악이 도입되고 우리 가곡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한 데는 기독교의 찬송가 보급에 힘이 컸습니다. 초기 가곡은 찬송가 분위기를 벗어나기 힘들었고, 서양 음악의 특징이나 왜색이 없이 함께 가질 수 밖 없었지요. 하지만 이런 우리 가곡의 특징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곡가 송재철이지요. 홍난파보다 한 세대 늦게 등장한 송재철은, 우리 가곡이 기독교적인 분위기나 민요, 왜색을 지닌 음악에서 탈피해 완전히 새로운 우리만의 현대 예술 가곡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들으실 <청밀밭> 역시 작곡가 송재철의 그러한 바람이 담긴 곡이지요.

    “달안개 높이 오르고 청밀밭 산기슭에 밤 비둘기. 스스로 가슴에 고인 그리움을, , 밤길을 간다. 풀잎마다 이슬이 앉고, 논 귀물이 우는 달빛에 하나하나 꿈을 날리고. 그 떠가는 푸른 비둘기. 눈물 어린 눈을, 향긋한 달무리를. 길은 제대로 숨어버렸다.”

    [청록파]는 청노루에서 유래된 문학사조입니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이 세 사람이 청록파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시들은, 자연을 노래하고 그 속의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들을 담았다는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지요. 소박하고 서정적인 이들의 시풍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담아냈기에, 우리 가곡의 노랫말로 역시 작곡가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박목월의 시에 곡을 붙인 이 곡 <청밀밭>198212월 발표가 됐습니다. 발표하기 11년 전인 1971년 이미 작곡이 됐습니다만, 더 좋은 곡을 만들기 위한 음악적인 욕심으로 발표하기까지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과 더불어서 송재철의 곡 중 수작으로 꼽히는 그러한 작품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25일 방송>

 

2. “무화과나무의 비유(29-33)”깨어 기도하여라(34-38)”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12월이 되면 세상이 참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은 차디찬 인생의 맛을 보지 못한 젊은이들 중에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 김민기의 <주여, 이제는 여기에>라는 노랫말입니다. 12월이 되면 구세군의 종소리가 들리며, 이곳저곳에서 도움을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어두운 구석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차갑고 쓸쓸한 계절에 주님이 오셨다며 성탄절을 정하는 것은 우연치고는 시쳇말로 신의 한 수입니다. 물론 로마가 태양신을 섬기고 있었는데(판테온),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태양신의 생일이었던 동지 이튿날을 잡다보니까 그리되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계절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 데 없는 세상 걱정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중략) 늘 깨어 기도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란 주님을 따라서 힘든 이웃들을 찾는 일이겠습니다.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많이 들어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만, 깨어 있다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자지 않고 있다는 말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로 지키다. 정신 차려 살피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깨어 있는 신앙생활을 말한다고 할 때, 이는 제정신을 가지고, 혹은 정신을 차려서 기도하라는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모든 기도를 다 용인하신 것이 아니라, 중언부언하는 기도나 헛된 꿈에 붙들린 기도는 적극적으로 금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시대정신을 가지고, 역사를 통찰하는 그런 기도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저는 성탄절의 의미를 얘기할 때마다, 마구간에 오신 주님을 찾아가는 일이라는 말을 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처음 마주하신 세상은 마구간이었고 처음 바라본 사람들은 겨울 깊은 밤 양떼를 지키는 베들레헴의 목자들이셨다고 말입니다. 성탄절은 이런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합당한 일이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할 수 있으면 성탄절 설교를 자원해서 하는 편인데, 연약한 이웃들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잘 하는 성탄절 보내기라고 생각하는 때문입니다. 금년 성탄절에는 누구에게 선물하실 생각이십니까?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