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절망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남은 자를 위한 새출발점. / 사 10:20-27.

박성완 2022. 12. 17. 00:00

묵상자료 7884(2022. 12. 17. 토요일).

시편 시 111:1-4.

찬송 21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곡이 대중의 곁에서 움트기 시작할 무렵 나라는 참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한 시기에 음악을 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지요. 재능은 있었지만 유복한 환경을 가지지 못한 작곡가들의 경우에는 더욱 더 그랬습니다. 작곡가 윤용하는 192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6644살의 나이로 별세를 했습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그 길지 않은 인생조차 견디어 내지 못했을 거라고 할 만큼, 윤용하가 음악에 바친 노력과 정렬은 그야말로 초인적이었지요. 하지만 환경은 내내 눅눅하지 못했고, 그는 평생을 가난 그리고 고독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밤은 고히 흐르는데 어데 선가 닭소리. 산 뫼에선 달이 뜨고 먼 산슭의 부엉 소리 외롭다 내 맘의 등불 꽃같이 피어졌나니. 내 사랑 불되어 타고, 님 생각아 내 마음에 차라. 사랑아, 내 사랑아, 너 홀로 날개 돋아, 천리만리 날지라도, 사랑아, 내 사랑아, 금빛오리 임생각 이 몸 깊이 아롱져 이끼핀 돌 되라. 밤은 고히 흐르는데 어데 선가 닭소리. 산 뫼에선 달이 뜨고 먼 산슭의 부엉 소리 외롭다 내 맘의 등불 꽃같이 피어졌나니. 내 사랑 불되어 타고, 님 생각아 내 마음에 차라.”

   보리밭의 작곡가이기도 한 윤용하는 음악적인 재능은 남달랐습니다만,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교회에서 독학으로 오르간과 작곡 이론을 익혔고, 만주 신경과 봉천을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해 왔습니다만, 일제에 항거하는 노래를 불러서 쫓겨 다녀야 했지요.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이 끝난 후에는, 지금의 초등학교인 보통학교만 가까스로 졸업한 학력 때문에, 안정된 직장을 가지지 못했고, 그의 가난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신부님에게 남긴 생을 마감하는 것이 그저 시원하다.”는 그의 말에서, 그의 삶이 진정 고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투박한 듯 하면서도 담담한 곡의 심상에서, 작곡가 윤용하의 쓸쓸한 삶이 전해져 옵니다. 황인호시 윤용하 곡 <고독>이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71217일 방송>

 

2. “이스라엘의 남은자(20-23)”거만한 앗스르의 멸망(24-2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인생살이에서건 신앙생활에서건 막다른 골목 같은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집의 대들보 같다 여겼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 신앙의 선배와 동지였던 분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나셨을 때, 그런 하늘과 땅이 노랗게 바뀌던 경험을 했을 때,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 일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세상 어디를 돌아보아도 의지할 데가 하나 없다 생각되었을 때, 바로 그런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인 앞에서 첫 설교를 했던 본문이 시 121:1-2이었습니다. 졸업설교를 교수님들도 계시는 자리에서 하였는데, “나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 뿐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본문의 배경이 저의 처지와 흡사하다 생각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새롭습니다. 본문의 배경을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한 유대인이라 설정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단 한번 그 자리에 서는 순간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던 고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가 마주한 예루살렘은 폐허더미였습니다. 선조들이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자랑스러워했던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불타버렸습니다. 그때 시인은 절망의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고, 마침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주목한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막다른 골목 같은 상황을 자주 언급합니다. 노아 시대에 만난 대홍수로 세상 사람들이 다 죽어나갈 때(7:23), 소돔과 고모라가 철저히 멸망할 때(19:29), 온갖 고생과 시련을 다 겪은 야곱이 에서의 병사들을 만났을 때(32), 기근으로 야곱과 열 한 아들들 애급을 찾았을 때(45:7)가 그랬습니다.

   이런 캄캄하고 막막한 절망의 순간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역사도 막을 내릴 수 밖이구나 털썩 주저앉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순간에 하나님께서 계획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 유명한 남은 자 사상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세 아들내외를 남겨두셨고, 롯에게는 두 딸을 남겨두어 훗날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절망의 순간에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의 약속을 기억나게 하셨고, 부모님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형들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에 파견해 두셨다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는 그런 처지에서, 하나님은 듣도 보도 못한 남은 자 사상을 싹트게 하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절망은 인간들이 자주 경험하는 마지막이고 최후의 낭떠러지로 보일 수 있겠으나, 하나님은 이 절망에서 새로운 출발점인 남은 자를 세워주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