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하나님과의 약속도 상호 신뢰의 바탕에서. / 사 33:17-24.

박성완 2022. 12. 23. 00:00

묵상자료 7890(2022. 12. 23. 금요일).

시편 시 112:9-10.

찬송 53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일이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속상할 때가 있지요. 머리카락 하나 떨어진 자리도 참지 못하고 깨끗하게 치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온 방안을 쓰레기통처럼 어질러 놓고도 태연하게 할 일 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게 생긴 것 같지만요. 의외로 너무나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면서 살고들 있지요. 그동안 각자 다르게 살아온 환경에 의해서 형성된 타인의 성격에다가, 내 성격을 맞추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면, 그 섭섭한 마음을 좀 뒤집어볼 필요가 있지요. 내 입장에서만 생각할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사소한 오해는 먼지처럼 털어버릴 수 있습니다. , 올해 아직까지 마음에 걸리는 일들이 있다면요. 옷깃에 묻어 있는 먼지를 털어내듯이, 빨리 다 털어버려야 몸과 마음이 가벼울 겁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71223일 방송>

 

2. “영광스러운 내일이 온다(17-24)”을 읽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분명히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따져본다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가령 마 5:18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회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강조해서 일점일획이라는 말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안에서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수도 없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만 해도 그렇습니다.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서, 절망과 희망의 메시지가 여러 차례나 뒤바뀌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런 변화 앞에서 어리석은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이리저리 바뀌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그 변화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침묵합니다. 모든 말과 약속은 그 전제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효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령 부모님들의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씀하시며 내가 너를 끝까지 돌봐 주시겠다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어느 날 철부지 아들은 부모님께 항의합니다. 실패한 자신의 인생이 부모님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정직하고 성실하지 못한 삶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결과만 주목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혈통적인 겉모습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했다면 모든 약속은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 결과를 담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희망에 가득 찬 약속의 말씀들입니다. 그동안 이스라엘의 미래를 절망적으로 셈하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시대가 어수선하고 불길한 소문이 난무하던 때 의례히 출몰하는 거짓 예언자들의 소리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에 그들의 모습은 물론 그 요란하던 절망의 예언들이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짓 예언자들에게 속아서 거짓 소문을 퍼트리던 입이 가벼운 사람들도 어딘가로 꽁무니를 빼버리고 흔적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씀이 울려퍼집니다. 마음의 평화와 영원히 굳게 서 있는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 예루살렘을 그 옛날 광야에서의 회막을 떠올리며, 성소의 말뚝 하나도 줄 하나도 뽑히거나 끊기지 아니하고 굳게 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를 재판하실 분은 오직 야훼이시고, 법을 세우시는 이도 야훼시고, 다스리시는 이도 야훼시라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다른 침략자들에 의해 삶과 생명을 맡기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어리석은 사람으로 전락해서는 안 됩니다. 두 번 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신앙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말입니다. 어떤 시련과 역경 앞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해서 이집트나 앗수르 같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영광스러운 날은, 희망의 미래는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그 약속을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삶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나님과 모든 약속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약속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