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원시시대의 꿈은 매우 좋은 신앙의 길잡이. / 창 28:10-22.

박성완 2023. 1. 3. 00:00

묵상자료 7901(2023. 1. 3. 화요일).

시편 시 116:1-4.

찬송 54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김연준은 음악이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한, 사람들이 가곡을 부르는 한 이 노래들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늘 자신의 음악적 위치를 새로 정의내리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음악만이 삶의 기쁨을 준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선지가 곁에 없으면 백지에 숫자로 약식 음표를 대신하면서도, 떠오르는 음악적 영감을 기록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우울한 고뇌와 시상이 담겨져 있는 곡 <비가>, 그의 작품 들 중에서 힘든 시기에 작곡가 김연준의 심경을 담고 있습니다.

    “,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은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 우는 벌레 소리뿐이어라. 별 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 이슬 되었도다.”

    시와 어우러진 애상적인 선율에서, 곡을 작곡할 당시의 작곡가 김연준이 느꼈을 애절한 비애가 전해집니다. 1970년 완성된 곡입니다. 새벽에 작곡된 작품 특유의 무상과 허무의 정서가 곡 전반에서 느껴지지요. 이후 소프라노 김영자의 노래로 독집 레코드로 취입하면서 알려진 곡입니다. 이 곡이 담겨진 여섯 번째 가곡집을 발표한 이후, 잇따라 발표한 연가곡 비가가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지요. 첫 연가곡집 [비가]의 큰 호응 덕분에, 김연준은 뒤 이어 제2의 연가곡 [갈대 밭]1976년 발표하게 됐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13일 방송>

 

2. “야곱이 베델에서 꿈에 하나님을 뵙다(10-22)”을 읽었습니다. 시그몬드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이란 책에서 우리 인간이 의식하는 것들을 빙산이라고 할 때, 훨씬 더 많은 무의식이 물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는 빙산과 같다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꿈이란 이런 무의식이 의식화되는 과정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의식의 재료란 과거에 경험했으나 잊혀진 사건들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꿈이란 결코 우연한 일이거나 계시가 아니라, 아스라이 사라졌던 경험들이 되살아난 조각들의 하나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는 프로이트 이후 심리학에서 말하는 주장일 뿐 종교적인 특별 경험과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중 막내인 야곱이 꾸었다는 꿈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야곱은 교묘한 술수로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까지 빼앗고 이런 과정에서 아버지까지 속인 벌로,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해서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도피여행을 가고 있었습니다. 앞날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불안한 가운데 돌베개를 베고 노숙을 하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땅에서 하늘에 닿는 사다리가 보였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던 것입니다. “나는 야훼, 네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의 하나님이시다. 네가 누운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고, 땅의 티끌만큼 많은 후손을 줄 것이다. 네가 어디를 가든 너를 지켜주겠으며,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너와 한 약속을 이룰 때까지 나는 네 곁을 떠나지 아니하겠다.” 야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의 문이로다.”하며, 자신이 베고 자던 돌을 세워놓고 예배한 후 베델이라 불렀습니다.

    이후부터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그곳의 이름은 베델이 되었습니다. 비록 베델이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을지라도, 하나님을 모시는 자리는 그곳이 어디든 베델이 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지기만 하면, 이곳에 하나님을 모시는 하나님의 집으로 삼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입니다. 이렇듯 약속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철부지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새벽기도회를 다녔습니다. 목사님의 지루한 설교를 자장가 삼아 교회당 마룻바닥에 엎드려 잠을 자다 흔들어 깨우시는 어머니를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의례 오 권사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헤어지는 큰 신작로 다리 앞에서 족히 한 시간은 얘기를 나누시는데, 주로 오 권사님이 지난밤에 꾸었다는 꿈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만났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무슨 도사 같은 복장을 한 귀인이라 했고, 음성도 똑똑히 들으셨다 했습니다. 헤어져 둘이 남았을 때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왜 오 권사님 같은 영험한 꿈을 꾸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되돌아보면 오 권사님은 성경을 읽지 못하는 문맹이셨는데, 셈은 밝으셔서 큰 여관을 운영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셨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록된 성경이 없던 원시시대에는 꿈은 매우 유익한 신앙의 길잡이였을지라도, 지금은 하나님의 현존인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 뵈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