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최고의 의(義)가 되는 믿음. / 갈 2:11-21.

박성완 2023. 1. 25. 00:00

묵상자료 7923(2023. 1. 25. 수요일).

시편 시 119:23-24.

찬송 41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이호섭은 대학을 졸업하던 1941년 자작시에 작곡을 한 <자장가>를 시작으로 작곡가의 길에 들어섭니다. 1991년 일흔넷의 나이로 별세할 때까지, 50년 가까운 세월을 작곡가로 활동을 해 왔지만, 그의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성품을 그 이유로 들곤 하지요. 차분하고 인내심이 많은 성격 탓에 곡을 작곡하는데도 쉬이 펜을 들지 않았고, 악상이 떠올라도 제대로 머리에 정리가 되기 전에는 흥얼거리는 법도 잘 없었다고 합니다. 이호섭의 가곡은 그러한 그의 성품을 닮아서 서정적이지만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고, 연주자나 감상하는 사람들 모두 편하게 부르고 들을 수 있는 그러한 곡들이 많았습니다. 송승교의 시에 곡을 붙인 <옛날은가고 없어도>가 바로 그런 곡이지요.

    “더듬어 지나온 길 피고 지던 발자국들. 헤이는 아픔대신 즐거움도 섞였구나.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때 어른 거려라. 옛날은 가고 없어도 그 때 어른 거려라. 그렇게 걸어온 길 숨김없는 거울에는 새 겨진 믿음 아닌 뉘우침도 비쳤구나.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옛날은 가고 없어도 새삼 마음 설레라.”

    지나온 날들에 대해서 막연한 회한에 잠기기보다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추억하는, 작곡가의 성품이 곡의 분위기를 통해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작곡가 이호섭의 가곡 중에서 <울음>, <국화 옆에서> 와 함께 자주 연주가 되는 곡이지요. 본래 피아니스를 꿈꾸었던 이호섭은 건반의 한 옥타브 정도를 가까스로 닿았던 손가락 때문에, 연주자로써 길을 포기하고 맙니다. 하지만 오랜 꿈이었기에 쉽게 단념하지 못하고, 피아노와 작곡 사이를 왕래하면서 젊은 날을 보내게 되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단념하고, 대신 작곡가이자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수도여사대 중앙대 등에서 강의를 하면서 틈틈이 작곡을 한 곡을 모아서 1975[이호섭 예술 가곡집]을 출판하지요. 추억의 낭만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곡 [옛날은 가고 없어도] 역시, 그의 첫 번째 예술 가곡집에 수록된 곡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125일 방송>

 

2. “게바에게 면박을 주는 바울(11-14믿음으로 얻는 구원(15-21)”을 읽었습니다. 두 단락이지만 첫 단락은 몇 마디하고 둘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초대 기독교회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예루살렘 교회 대표 게바가 안디옥을 방문해서 이방인 출신 교우들과 식사를 하고 있다가, 예루살렘 교회가 보낸 교우들이 들이닥치자 식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마치 이방인 교우들과 식사 친교를 하지 않는 것처럼 시치미를 뗀 일이 있었습니다. 할례 받지 않는 사람들과 교제를 할 수 없다 가르쳐야 할 게바가 이를 어긴 것을 알게 될까봐 취한 위선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정직하지도 않고 합당하지도 않은 게바를 책망한 것입니다. “유대인이면서 유대인처럼 살지 않고 이방인과 같이 사는 당신이, 어떻게 이방인들에게 유대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입니다. 참으로 낯부끄러운 일입니다. 오늘의 묵상자료인 둘째 단락은 기독교회가 가르치고 믿는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어떻게 배웠습니까? 목소리를 극저음으로 하고 믿습니다. 아멘하면 그게 믿음입니까? 아니면 요즘 한 연예인의 주삼창을 외치고 기도를 하는 것을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라고 알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사도는 믿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구원의 상태)를 갖는데는 율법에 의한 행위로써가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 이유를 율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세사에서의 의란 상대적인 것일 뿐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압니다. 성녀(聖女)라고 존경하는 테레사 수녀마저 자신이 살아온 의를 가지고서는 하나님 앞에서 조금도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고 수도 없이 고백했습니다. 이를 프랑스 수학자 브앙카레는 수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물체가 강한 빛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속까지 훤히 비춰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순수성을 잃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원의 길, 곧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죄 없다 판결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인 우리들의 인식이나 의지에 따른 믿음이 아니라, 다시 말하면 내가 믿는다고 말만 하면 믿음이라고 하는 식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시고 계획하신 것에 따른 말씀을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행동을 보신 하나님은 그의 이런 믿음의 행동을 의()로 여기셨던 것입니다(15:6). 그러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이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일을 말하며, 최고의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