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1세기 기독교회의 지도자 자격 요건들. / 딤전 3:1-16.

박성완 2023. 2. 15. 00:24

묵상자료 7944(2023. 2. 15. 수요일).

시편 시 119:89-91.

찬송 37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상병 시인은 한국 문단에서, 영원한 자유인 마지막 순수시인, 마지막 기인 등으로 일컬어지는 이입니다. 눈 감을 때까지 파란만장했던 그의 생은 연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장르로 새로 태어나기도 그 어떤 것도 그의 삶과 시를 능가하지는 못합니다. 평생 가난을 벗 삼아 지냈습니다만, 그의 시안에는 비탄과 원망 대신, 그의 성품을 읽을 수 있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상만이 담겨 있었지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은 글. 그는 성숙한 시란 바로 이러한 것이다 말하곤 했습니다. 많은 그의 담백한 시에서, 무욕의 삶, 삶의 관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 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 구름 손짓하며 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 말하리라.”

    죽음을 앞에 두고 두렵거나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아마도 죽음을 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게 천상병은 우리의 생을 소풍이라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70년 시 <귀천>을 발표 했을 당시에는, 기독교에서의 일요일을 일컫는 주일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영혼이 쉴 여유를 갖게 되는 시간이라는 뜻에서 말이지요. 전도유망한 젊은이에서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이후 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돼서 정신병원에 수감되기도 했습니다만, 그는 스스로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라 여유롭게 말하곤 했습니다. 삶을 낙천적으로 대하는 시인, 천상병의 인생관이 전해져 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215일 방송>

 

2. “교회 감독의 자격(1-7)”, “보조자의 자격(8-13)” 그리고 심오한 진리(14-16)”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첫째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완전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시던 선생님이 수요 기도회에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동안 교회에서 듣고 배웠던 말씀과는 사뭇 다른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도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교회의 직제에 관한 말씀이었는데, 목사라는 직분은 없고 감독이나 장로라는 직분과의 관계를 말씀하시면서 혼돈을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1년 선배되는 분이 훗날 형제 교회의 총회장이 되어서 축하하러 방문했던 일이 있었는데, 자신의 교파에서는 모두가 형제라고 하면서 가르치는 교사가 있는데, 그 교사도 하룻밤 사이에 임명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간밤에 꿈이나 기타 다른 방법으로 교사가 되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면 진위를 크게 따져보지 않고 임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성경대로 믿고 살자는 원칙에서 그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의 직제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 비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대교회에서는 감독이나 장로라는 직제가 교회를 지도하는 중요한 것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시대 상황이 발전하면서 필요에 따른 직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인데, 교회의 감독의 자격 요건으로 몇 가지를 들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습니다. 첫째는 탓할 데가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남의 구설수에 올라 있는 사람이라면 교회 공동체에 덕을 끼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는 한 여자만을 아내로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1세기 중동 사회는 일부다처가 보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 가운데서도 부인을 두 사람 이상 두거나 첩을 두는 사람들이 흔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인 70년 전만 해도 시골에서 웬만큼 부자라는 사람들은 의례히 첩을 두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이들이 간혹 있었습니다. 부자의 증표처럼 말입니다. 셋째는 자제력과 신중한 성품을 가진 이른바 품위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요즘은 법정에서 조용히 처리하는지는 몰라도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온 동네가 시끄러울 정도로 부부 싸움을 하는 가정들이 많았습니다. 넷째는 남을 대접할 줄 아는 사람, 다섯째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능력이 있는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섯째는 술을 즐기지 않고, 일곱째는 난폭하지 않은 온순한 성품이어야 하고, 여덟째는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홉째는 자녀들을 잘 다스리고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열 번째는 입교한지 제법 된 사람으로 교회의 형편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런 감독의 자격은 교회 안팎으로 덕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예나 제나 지도자는 교회 안과 밖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신학적 소양이 무관심한 듯하나 그 시대적 환경이 그랬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