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자 요한의 삶의 교훈. / 요 3:22-36.
묵상자료 7960호(2023. 3. 3. 금요일).
시편 시 119:132-134.
찬송 9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거리를 측량하는 잣대는 여러 개가 있다고 이어령 선생은 말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는 정으로, 신과 인간의 거리는 믿음으로, 자연과 인간의 거리는 문명으로, 그리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거리는 외교로 측량 된다고 말이지요. 좋은 사람을 오래 만나려면 반드시 거리를 지키라고 연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렌즈를 빼고 팽팽 도는 안경 낀 모습을 들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 화장을 지운 맨 얼굴에 화들짝 놀라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거리. 가계부를 쓰는 남자의 소심함을 들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 모르는 사람도 아는 사람인 듯 착각 할 정도로 많은 것이 공개된 세상에서는, 적절한 거리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겠지요.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3월 1일 방송>
2. “세례자 요한의 마지막 증언(22-30절)”과 “하늘에서 오신 분(31-36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으로, 세례자 요한이 옥에 갇히기 전에 살렘 가까운 곳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거닐고 있을 때,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이를 보고 자신의 스승에게 알리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고 계시다는 것과 사람들이 선생님에게서 그 분에게로 몰려가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듣기에 따라서는 경쟁심을 부추기는 말로도 들리고, 시샘하는 말로도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대답은 전혀 의외였습니다. 우선 과거부터 해온 자신의 말에 대한 확인부터 합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점과 오직 그리스도를 알릴 사명을 갖고 온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를 분명히 밝힙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말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라는 암시를 하고 있고, 둘째는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으로, 사람들이 그를 향해 몰려가는 것은 그가 신랑이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날의 경쟁 사회 같으면, 자칫 라이벌로 여길 법한 관계이지만, 세례자 요한은 시종일관 자신의 역할과 임무를 새김질 하고 있었던 겻입니다. 인기의 변곡점이 자신에게로 기울고 있다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안면 몰수하고 인기 몰이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 시대에는 도무지 찾아보기 힘든 순수함이라 하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인성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30절에 잘 나타납니다. 개역 개정판에서는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라고 번역되었고, 공동번역판에서는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어느 쪽 번역을 택하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례자 요한의 예수님 관은 일반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토리 키 재기식이 아니라, 절대자에 대해 범접할 수 없는 보통 사람의 최상의 극존칭 태도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자 요한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예수관과 차별화되는 인식과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세례자 요한은 자신 앞에 펼쳐질 냉혹한 시련을 내다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시 최고 권력자인 헤롯을 향해서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를 빼앗아 왕비로 삼은 것은 부도덕하다고 비난하였으니(마 14:3-4), 결국 그 일로 체포되었고, 헤로디아가 낳은 딸 살로메의 춤사위에 반한 헤롯이 소원을 말하라 했고, 그녀의 소원이 헤롯의 목을 잘라 소반에 담아오게 하는 것이어서, 세례자 요한의 삶은 어이없이 끝나고 말았습니다(막 6:17-28). 이런 비극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세례자 요한의 삶은 구세주로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의 안내자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꾼으로 충실하였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지워진 소명에 최선을 다하였음은, 많은 순교자들에게 깊은 영감과 모범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