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 역시 매일 기적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기를. / 요 4:43-54.

박성완 2023. 3. 7. 00:00

묵상자료 7964(2023. 3. 7. 화요일).

시편 시 119:143-144.

찬송 13.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개화초기 서양음악을 공부하고 우리 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던 이들 가운데 홍난파가 있습니다. 그는 당시 문화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었던 우리나라에서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 그리고 평론가로써 늘 한발 앞서는 행보를 하지만 비극적인 시대의 상황과 아내와의 사별 등을 겪으면서 홍난파도 남모를 고통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느꼈을 허무와 비탄의 마음은 사찰에서의 감흥을 담아낸 <성불사의 밤>, <장안사> 같은 곡을 통해서 표출되기도 했지요.

    “장하던 금전벽우 잔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홍난파의 음악은, 한으로 대표될 수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애상을, 선율 속에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봉선화>, <옛 동산에 올라>, <사랑>과 같은 작품들 안에서 섬세한 감수성,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면, <장안사>, <성불사의 밤> 같은 곡은 장엄하면서도 쓸쓸함이 느껴지지요. 장안사는 한 때 금강산의 4대 사찰로 꼽힐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전소되어서 절터만 남게 되었고 그 모습에서 느낀 허무와 쓸쓸함을, 노산 이은상과 홍난파가 담아냈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34일 방송>

 

2. “고관의 아들을 고치신 예수(43-54)”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불완전할 뿐 아니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중한 병에 걸려 눕게 되거나, 엉뚱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고생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가 되면 잊고 있었던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양 호들갑을 떨면서 겸손 모드로 바뀌곤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갈릴리 가버나움의 한 정부 관리가 아들이 중병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을 때, 주님이 오셨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얘기가 나옵니다. 아무리 근엄하고 젠체하는 사람이라도 자식이 아파하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간절함을 다 모아서 주님께서 자신의 집을 방문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며 당신 아들이 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러니 더는 간청할 수 없어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마중 나온 종들이 아들이 살아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낫게 된 시간을 따져보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인 것을 알고, 그의 온 집안이 모두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서 기자는 이를 예수님께서 갈릴리 돌아오신 후 행하신 두 번째 기적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어느 묵상식구가 덕담으로 묵상자료 몇 천회 기념자리에서, 묵상자료 1만회를 기대한다고 말한 일이 있습니다. 까마득하게만 보였던 그 일만 회가 불과 7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7,964호를 발송하게 되었으니까, 이제 20년도 훌쩍 지난 이력을 가지게 되었는데, 매일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숙제하듯 묵상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삶이야말로 신앙생활의 증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지금까지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기적 속에서 살아온 것을 시인하고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목회할 때 부산시 기독의사회와 제가 소속된 부산 기독교 목양회가 공동으로 학술발표회 등을 개최하면서 친교를 나누었는데, 그 때 부산지역의 유지이신 분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의사 장로님은 인간은 매일 기적가운데 살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인체는 수만 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하시면서, 아주 미세한 먼지나 마시는 물을 통해서 치명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실제로 저 자신만 해도 저의 편도가 너무 약해서 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고 진단받았는데, 50년 이상을 설교자로 교수로 살아왔으니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더 이상의 기적타령은 하지 말자는 말입니다. 이미 간증거리가 수 백 수 천 가지로 겹겹이 이력을 쌓고 있으니 말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주님의 도움을 받아 기적적인 삶을 살았던 이들을 부러워말자는 말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 매 순간 기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