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역사속에 오셨던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우리 교회. / 요 6:27-40.

박성완 2023. 3. 22. 00:00

묵상자료 7979(2023. 3. 22. 수요일).

시편 시 121:1-2.

찬송 45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채동선은 일제 강점기에 이미 독일 유학을 다녀온 지성인이었습니다만, 귀국 후 일제의 지식인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자,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두문불출 합니다. 서울 수유리에 땅을 마련하고 새벽 마다 밀짚모자에 고무신을 신고,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서 농사일을 하면서도, 시류와는 절대 타협하지 않았지요. 다만 농사를 지으며 우리의 민족혼이 담긴 글을 읽고, 곡을 쓰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채동선은 특히 정지용의 시로 대부분의 곡을 썼습니다. 그 가운데 <고향>에는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려뇨. 산 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 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먼 하늘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매 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 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이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작곡가가 독일 유학시절에 구상한곡이어서 그런지, 고향과 조국을 그리는 절절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시인 정지용은 한 동안 한국 문학사에서 지워졌었던 문인이었지요. 한국 전쟁당시 월북했다, 납북됐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이념을 배반했다는 명목으로, 그의 모든 작품들이 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채동선이 정지용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들었던 가곡 고향 역시도 같은 이유 때문에 박화목의 시 <망향> 또 이은상의 <그리워>로 개사(改詞)되기도 했습니다. 1988년 정지용의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로, 다시 원래의 가사였던 <고향>을 찾았습니다만, 많은 이들은 이미 그리워 라는 곡으로 익힌 후였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320일 방송>

 

2. “생명의 빵2(27-40)”을 읽었습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야망은 물론, 다른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서 유별나게 튀기를 좋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질이 우리 인간이 수많은 시행착오를 저지르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신학자들 가운데는 일부이기는 하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런 모난 모습을 보이는 인물들이 가끔 등장하곤 하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러 간 사이에 백성들의 청원이었다면서 황금 송아지 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배역한 일이며,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 같은 위인들입니다. 그냥 고분고분 사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거나, 무슨 입에 가시라도 돋는 듯, 럭비공처럼 엉뚱하게 튀어 오른다는 말입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는 없어지지 아니하는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고 말씀하시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되물은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 곧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야말로 가장 귀하고 중요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주시는 하늘의 빵이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늘의 빵이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일에서 흔들리는 것은 물론 아예 중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어느 건실한 교회가 목회자 청빙 공고를 냈는데, 그 제일 조건으로 예수를 잘 믿는 분이라.”고 했다 합니다. 예수를 잘 믿는 교회 지도자가 매우 귀하다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속적인 출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명예를 탐하는 이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교세를 키워서 최고의 지도자라는 입지를 다지려 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이 아니고 섬기는 사람이어야 하며, 위로 올라가는 야망의 사람이 아니라 밑으로 내려가는 겸손의 사람이어야 하며, 황금 면류관이 아니라 가시 면류관을 쓰는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따르고 닮으라고 제시한 예수님은 오래 전에 구석진 골방에 유폐시키고 설교 어디에서도 그런 분을 앞에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성도들이 교회를 등지는 것에서 문제를 찾으려고 하지만,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예수 없는 예수교가 되어버린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눈치가 빠른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예수님을 우리 교회당의 중앙에 모셔오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면 교회는 당장 건강할 텐데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