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썩을 양식에서 썩지 않을 양식으로. / 요 6:16-27.

박성완 2023. 3. 21. 00:00

묵상자료 7978(2023. 3. 21. 화요일).

시편 시 120:5-7.

찬송 377.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은 시조 시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가 시를 짓기 시작하던 . 초기에는 오히려 자유시를 주로 썼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이후에 시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고, 시조가 고루한 것이라는 사람의 편견을 깰 수 있을 만큼 현대적이고 기발한 시조들을 발표하면서, 가람 이병기와 함께 한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시조 시인으로 자리 매김 했지요. 정해진 운율과 가락을 갖고 있는 시조는, 음악과 접목하기엔 현대시 보다 더 적합했습니다. 덕분에 <가고파>, <봄처녀>, <성불사의 밤> 같은 시조가 가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님 찾아 가시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까나.”

    이은상 시조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작품이지요. 1932년 작곡된 곡입니다. 이듬해인 1933년 간행된 홍난파의 가곡 작품집, [조선 가곡 작곡집]을 통해 발표됐습니다. 봄의 풍경을 젊은 여인의 모습으로 묘사한 시조의 분위기 속에서, 신화 속의 미의 여신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음악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기도 하고요. 다양한 음악회에서 자주 연주가 되는 곡이어서 조금은 식상하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봄이라는 계절과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곡이 아닐까 합니다. 이은상의 시에 어우러진 홍난파의 여리고 아름다운 음악적인 표현이 봄의 낭만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319일 방송>

 

2. “물 위를 걸으시다(16-21)”생명의 빵1(22-27)”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둘째 단락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곳을 벳새다 광야라고 부르는데, 그곳엔 팔복교회당이 있습니다. 팔각형의 지붕을 한 건물인데, 놀랍게도 그 건물을 위해 헌금한 이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소리니였습니다. 제 눈을 의심할 정도로 분명히 그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보니까 1938년에 무소리니가 자금(헌금)을 댔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깨끗한 헌금으로 건축한 성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을 중심으로 매일을 강행군하시는 주님은 저녁 시간이야말로 고단한 육신을 쉴 수 있는 꿀맛 같은 기회였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그 전날 예수님의 일행과 헤어지는 군중들이 날이 새자 무섭게 주님을 찾아 나선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됩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 일행을 발견하고 반가운 인사로 언제 이곳으로 오셨습니까?” 라고 했을 때, 주님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쓰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권능을 내게 주셨기 때문이다.”고 하셨습니다.

    썩을 양식과 썩지 않을 양식에 대한 말씀을 들었던 군중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궁금해집니다. 틀림없는 주님의 말씀이지만 주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썩을 양식을 찾아왔던 것이 분명하니 아마 큰 혼란을 느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썩지 않을 양식에 대해서도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별의 별 직업들이 있는 것을 영화 <인 에어>를 통해 알았습니다. 직접 해고를 꺼리는 고용주를 대신해서 해고를 통보하는 전문가도 있는데, 참 잔인한 직업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문가조차 대면 통보가 심하다 싶어, 비대면 으로 화상 통보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신입 사원의 요청을 시행한 며칠 뒤, 통보를 받는 사람이 자살을 하자 상처를 입은 신입사원이 사표를 내고 떠나갑니다. 무슨 일을 하던 급여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당장 가족을 부양하고 미래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는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게 뭐 어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생 힘써야 할 일은 보람은 물론 가치 있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래 전 낙도(落島)에서 복음을 전하는 한 중년의 목사님이 찾아왔습니다. 노후 대책이나 자녀 교육은 물론 의료비마저 감당하기 힘들다며, 얼마나 버틸지 모르겠다 울먹였습니다. 제가 했던 말은 주님께서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가장 선하고 복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역사에서는 그런 분들이 빛나는 이름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을 기억하고 용기를 주고 기도할 이유가 있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