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성경 말씀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 / 요 6:41-51.

박성완 2023. 3. 23. 00:00

묵상자료 7980(2023. 3. 23. 목요일).

시편 시 121:3-6.

찬송 8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라 유치환은 우리 문학계에서가장 긴 연서를 쓴 시인으로 일컬어집니다. 그의 나이 마흔을 전후 시작해서,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20년 세월을 한결같이 한 여인에게 보낸 편지가, 자그마치 5천여 통이나 됐다고 하지요. 유치환의 연서를 받은 이는 바로 금수현의 가곡 <구름>을 지은 시조 시인 이영도였습니다. 지인들은 이영도를 단아한 아름다움이 잇는 기품 있는 여성으로 기억하고 있지요. 유치환과 이영도의 사랑은 담담하게 서로를 지켜 보내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만, 둘을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산이여, 목매인듯 지긋이 숨죽이고 바다를 굽어보는 먼 침묵은, 어쩌지 못할 내 목숨의 아픈 견딤이랴. 너는 가고, 애모는 바다에 저무는데, 그 단 라임 같은 물결 같은 내 소리. 세월은 덧이 없어도, 한결 같은 나의 정.”

    19672월 청마 유치환의 교통사고 소식에 많은 이들이 상심했습니다만, 무엇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이영도였습니다. 오랫동안 그녀에게 청마 유치환이 교통사고로 마감했다는 소식은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두 시인이 처음 만난 곳은 통영 여중에서였습니다. 유치환이 국어 교사로 이영도는 가사교사로 함께 교편을 잡고 있던 때였지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20여년이 넘는 세월을 교류하면서, 이영도와 유치환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늘 같은 글을 두고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321일 방송>

 

2. “생명의 빵 3(41-51)”을 읽었습니다. 최근 신이 된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사회와 교계를 흔들고 있는 이단 교주들의 얘기가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성경의 중심 사상을 문제로 삼는다면, 비 기독교인들에게는 집안싸움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는 방관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도 성폭행범으로 10년의 실형을 살고 나온 정명석, 천국을 찾아간다며 피지로 신도를 기만해 끌고 가 강제 노역을 시키고 폭행 사기 감금을 저지른 신옥주는 6년 형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만민중앙교회의 이재록은 16년 형 확정 복역, 감염병 예방 방해, 횡령 등으로 법정에 선 신천지의 이만희는 가정 파괴범으로도 혐의가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 까불지 마!”라고 막말을 했던 전광훈의 아들과 며느리가 장신대 신대원에 합격한 일입니다. “감옥에 들어가 보니까 부목사란 놈도 전도사란 놈도 다 배신하는 걸 보고, 한 놈도 믿을 수가 없어 아들에게 교회를 맡기겠다.”는 전광훈의 결정이 난 후에, 세습을 반대하는 법을 가진 예장 통합 신대원에서 그의 아들과 며느리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한국 기독교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는 말씀에 유대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삶의 배경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라고 하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그렇게 못 마땅하냐는 공격적인 대답으로 논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사는 예수님의 가정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요셉과 마리아라는 부부에 대해서, 그리고 맏아들 예수와 그의 형제자매들에 대해서, 이웃으로 친구로, 혹은 동업자로 오랜 교제를 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나 혹은 오늘 우리들이 누군가에 대해서, 또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은 매우 초라한 수준입니다. 엊그제 몇 년 동안 교제하는 지인이 무거운 입을 열었는데, 공부에 갈등을 하고 있는 아들 얘기를 꺼낸 것입니다. 매일 함께 한 울타리 안에서 살고 있는 가족, 그것도 자식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을 것입니다. 나는 내 자식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전혀 없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말투며 밥 먹는 습관 정도만을 가지고 잘 알고 있는 듯 안심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서는 물론 예언서도 줄줄이 꿰다시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위 앎이라고 하는 것들이 줄에서 떨어져 나간 구슬처럼 따로따로 였던 것입니다. 연결되지 않는 단편적 지식들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야에서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는 매일의 양식에 불과하다는 것, 그러나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씀했을 때, 그들은 당연히 귀를 기우려 듣고 깊이 생각해 봤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입니다. 이를 주님은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우리를 흔들어 깨워주실 성령 하나님께 엎드릴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