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의 처지에 따라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주님. / 요 11:28-44.

박성완 2023. 4. 1. 00:00

묵상자료 7989(2023. 4. 1. 토요일).

시편 시 125:1-3.

찬송 46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작곡가 정세문은 <어린이 행진곡>이나 <겨울나무>와 같은 동요의 작곡가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입니다. 그의 가곡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만, 멜로디가 곱고 훈훈한 정감과 서정을 담고 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지요. 이 가곡 역시도, 동요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부르기 편한 곡이 가장 좋은 곡이라는 생전의 인터뷰처럼 작곡가 정세문은 각곡의 간결하고 편안한 곡의 전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대만 없게 되면 가슴 뛰는 닭소리, 늘 들어라. 밤은 아주 새어올 때, 잠은 아주 달아날 때. 꿈은 이루기에 어려워라. 저리고 아프며, 살기가 왜 이리 고달프냐? 새벽 그림자, 산란한 들풀 위를, 혼자서 혼자서 거닐어라.”

    기약 없는 기다림은 사람을 약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울리지 않는 전화기의 환청이나 유리창에 아른거리는 듯한 누군가의 환각을 보기도 하지요. 그 고된 기다림의 마음을 김소월은 이 시 <닭소리>를 통해 그려냈습니다. 슬퍼도 슬프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던 김소월의 시 가운데, <봄 밤> <잊었던 마음>과 함께 가장 직접적으로 슬픔을 담아내 시들로 손꼽히지요. 밤새 몸을 뒤척이며 잠 못 이루다가, 새벽을 맞는 이의 서글픔을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43일 방송>

 

2. “눈물을 흘리신 예수(28-37)”다시 살아난 나사로(38-44)”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대하시는 우리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여러분은 문상 혹은 조문을 다녀보셨을 것입니다. 가족 중에 별세한 분이 있어서 상주가 되어 조문객들을 맞곤 하는데요. 슬픔으로 몸도 가누기 힘든 유족들에게 인사를 나눈 후에 무엇인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주어야 하는데,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 힘들 때가 더러 있습니다. 목회적인 차원에서 교우 가정일 경우, 어떤 위로의 말보다는 그냥 말없이 손을 잡아 주거나 어깨를 토닥이는 것이 훨씬 더 큰 위로와 힘이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절망과 슬픔에 동참하고 있다는 가장 효과가 있는 스킨십이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나사로의 두 누이를 대하는 장면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주님이 오신다는 전갈을 받자 뛰어나가 주님을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여기 계셨다면 제 오빠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원망어린 인사를 전했다하고(20-21), 마리아는 주님께서 찾으신다는 언니의 전갈을 받고 주님께 나아가서는 동일하게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고 말했을 때, 주님은 비통한 마음이 북받쳐 올랐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전합니다(33-35). 그래서 유대인들은 주님께서 나사로를 무척 사랑하셨던 모양이라고 수근 거렸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관찰을 통해서 주님께서 사람을 대하시는 방법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감정이란 어떤 공식을 대입하듯 객관성을 띄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의 감정이란 시간과 분위기에 의해서 증폭이 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감정으로 발전하기도 하고 진화해 나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처음 마르다를 대할 때 가졌던 감정이 서서히 발전해서 슬픔을 더해가는 단계로 발전하기도 하고 진화해 나갔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 보다는 더 진하고 더 복잡한 슬픔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르다를 대할 때의 감정과 마리아를 대할 때의 감정이 연결 혹은 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해야지, 서로 다른 감정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제가 관찰한 점은, 우리 주님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처럼 유별나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형편과 처지가 달라, 어떤 이는 큰 절망과 좌절감에 주저앉아 있을 수 있고, 어떤 이는 괜스레 호들갑을 떨고 있을 뿐일 때, 우리 주님은 그들 각자에 적합한 방법으로 다가가실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주님에게서조차 차별대우 운운하며 울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 만우절입니다. 우리들 삶에 흥을 돋우는 별미였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