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우리의 신앙은 수동태. / 롬 8:1-11.

박성완 2023. 4. 8. 00:00

묵상자료 7996(2023. 4. 8. 성주간 토요일).

시편 시 128:4-6.

찬송 145.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웬만한 일은 걱정하지 않은 사교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서 자신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성격적 특징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행복은 타고난 것이라고 최근 영국의 한 연구팀이 밝혔다고 하더군요. 영국의 에든버러 연구팀이 900쌍의 일란성 쌍둥이를 대상으로 성격과 유전자를 분석했는데요. 행복과 관련된 성격적 특징에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50%, 생활 습관이나 건강과 직업 등 외부 환경의 영향이 50%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 결과를 놓고 결국 행복은 타고나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보도한 기사가 많던데요. 절반이 타고 나는 것이라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절반일 텐데, 왜 그 부분은 지나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절반의 행복을 꼭 찾으시기를 바랍니다<KBS FM 1, 출발 FM과 함께, 200847일 방송>

 

2. “성령이 주시는 생명(1-11)”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동사에는 능동태라는 것과 수동태라는 것이 있습니다. 능동태라는 동사는 주어가 자신의 의지나 노력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고, 수동태라는 동사는 주어가 타인이나 다른 것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을 보면 어린 시절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어린 아이 혼자서 학교에 가지 못합니다. 옷이며 준비물 등을 부모님이 챙겨주시고, 손을 잡고 길을 건너는 등 도움을 받게 됩니다. 이럴 때는 아이가 학교에 가는 게 아니라(능동), 아이는 부모님에 의해 학교에 보내지는(수동) 것입니다. 그러다가 길도 익숙해지고 친구들도 생기게 되면 제 힘으로 학교에 갈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수동으로 움직이다가 차츰 능동으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의지와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하거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 의지와 노력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힘에 이끌려 신앙생활도 하고 구원에도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거나 구원에 이르는 것은 오롯이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일반종교의 기독교 구원관과는 대치(對峙)되는 일반종교의 구원관인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기독교가 가르치는 구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는 뜻입니다.

    제가 시무하던 교회 마당에 이웃 아파트에 거주하시는 할머니 한분이 손자를 등에 업고 놀러오셨습니다. 자신을 불교도인데 한 집 안에서 여러 종교를 믿으면 화가 있을 것 같아 늘 주의를 주었는데, 큰 손자 놈이 우리 교회를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좋겠느냐고 상의를 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조금만 더 두고 보자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는 손자에게는 화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손자를 지켜주시는 분이 계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염두에 둔 대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우리들의 지혜나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 가운데로 인도하심으로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 역시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자랑하는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우리들이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더구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며(2:8),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로써 우리가 가진 믿음이나 은총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능동적으로 얻음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란 죄짓는 것들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한 일을 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믿음 가운데 살고 있고, 은혜가운데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무조건 감사할 뿐 다른 아무 것도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없습니다.

 

3. 묵상식구 전의찬 교수님께서 <평화신문> 시사진단 코너에 부활절에 생각하는 탄소중립과 신앙인의 역할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쓰셨는데, 부활절에 묵상할 의미있는 글이었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