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님이 언제든 도우실 것입니다. / 요 14:15-31.
묵상자료 7999호(2023. 4. 11. 화요일).
시편 시 129:5-8.
찬송 17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수연이란 벗이 병중의 안정복을 위해 양생의 요령을 적은 <위생록>이란 책을 빌려주었다. 안정복이 읽고 돌려주며 책에 발문을 써 보냈다. 그중의 한 대목. ‘위생의 방법은 안으로 그 술법을 다해도 밖으로 오는 근심을 조심해 살펴 미리 막아야 한다. 그래야 안팎이 다 온전할 수 있다. 선표嬋豹는 안을 다스렸으나 범이 밖을 잡아먹었고, 혜강嵇康은 양생에 힘썼지만 마침내 세화에 죽었다. 그래서 군자는 거처하는 곳을 삼가고, 사귀는 바를 조심해야 한다. 두 사람은 안에만 힘을 쏟고 밖에는 소홀해 이렇게 되었다. 이것이 과연 양생의 방법이겠는가?’ 위 글 속 선표의 얘기는 고사가 있다. 전개지가 주나라 위공에게 말했다. ‘양생은 양치는 것과 같습니다. 뒤처지는 놈을 살펴 채찍질 하는 것이지요.’ 위공이 무슨 말이냐고 되묻자, 전개지가 다시 말했다. ‘노나라 사람 선표는 바위굴에서 물마시고 살며 백성과 이끗을 다투지 않았지요. 70새에도 어린아이의 낯빛을 지녔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린 범을 만나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장의는 부잣집 가난한 집 가리지 않고 사귀었는데, 나이 40에 속에 열이 치받는 병으로 죽었습니다. 선표는 안을 길렀지만 범이 밖을 먹어버렸고, 장의는 밖을 길렀는데 병이 안을 공격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뒤처지는 것에 채찍질 하지 않았습니다.’
박세당은 <남화 경주해산보>에서 ‘사람의 우환을 평소 염려했던 데서 일어나지 않고, 늘 생각하지 않은데서 일어난다.’고 풀이했다. 선표는 맑게 살았지만 주린 범이 못 알아봤고, 장의는 사교에 힘써 곳곳에 보험을 들어두었으나 제 몸 안의 질병은 살피지 못했다. 살면서 호식병공(虎食病攻)의 근심을 면할 길이 없다. 안만 살펴도 안 되고 밖만 돌봐도 소용없다. 그렇다면 어찌할까? 안팎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채찍을 들고 뒤처지는 놈의 꽁무니를 후려쳐야 전체 대오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정민,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 ; 호식병공/虎食病攻>, pp.45-47.
2. “성령의 약속(15-26절)”과 “예수의 평화(27-31절)”을 읽었습니다. 저희 집 대문 곁에는 황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습니다. 다섯 잎의 노란 꽃인데 라일락과 함께 제가 좋아하는 꽃 중의 하나입니다. 황매화는 꺾꽂이가 가능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질기고도 풍성한 생명력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그리고 여러 달 꽃구경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거실에 앉아서 1년 내내 대 여섯 종류의 꽃을 보며 생활하는 것이 시골 생활의 축복인지 모르겠습니다. 목련화가 지고 난 저의 집에는 수선화가 몇 송이 남아 있고, 꽃 잔디가 지천에 자라고 있고, 이제 라일락과 튤립이 철쭉과 함께 피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보낸 후에 누리는 기쁨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만 읽는 성경 독자라면 마치 주님께서 떠나신 자리에 성령께서 오실 것이라 하시니까, 이전에는 성령은 우리들 삶과 무관한 듯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이 누구이신지 무엇을 하시는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성령님은 성부 성자 하나님과 함께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들과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신으로 세상에 오셔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셨던 주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실 것을 생각하는 주님께서, 우리들의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 채워줄 성령님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려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알려주신 성령님은 다음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첫째는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항상 함께 계시는데, 특히 그들의 마음속에 거하신다는 것입니다(17절). 가끔 부흥사들이 성령님을 마치 귀신을 불러내듯(초혼招魂) 불러내기도 하고 명령하기도 하는 망령을 떨곤 했는데, 성령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한 위이심으로, 우리들 인간이 함부로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제 마음대로 부릴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둘째, 많은 역할을 하시는데 가르치고 기억나게 하시고(26절), 죄를 깨닫게 하시고(16:8), 성경을 깨닫게 하시는(행1:16) 등의 일을 하십니다. 셋째 성령님은 무엇보다 우리들이 무엇을 하든지 구하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시는 보혜사이십니다(16절). 주님께서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때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성령님의 별칭인 보혜사(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ς)란 용어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 용어는 “남을 위해서 나타난 자”라는 의미이며, 하는 일은 돕는 이이면서 중재자와 조정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도 없이 많은 어려운 일들을 만나게 될 것인데, 그때마다 어디로부터 우리에게 나타나서, 우리들이 가진 문제들을 일깨워주시고, 필요하면 중재자 역할을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어떤 형편 처지에서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 우리를 돕기 위해 언제든지 우리를 찾아오시며 가르쳐주시고 중재자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시는 성령님을 기억하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지 보혜사 성령님이 곁에 계십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