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주님의 중보기도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들. / 요 17:12-19.

박성완 2023. 4. 18. 00:00

묵상자료 8006(2023. 4. 18. 화요일).

시편 시 132:11-12.

찬송 372.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명나라 사조제謝肇淛(1567-1624)<문해피사>에 보니, ‘세사상반世事相反의 조목이 나온다. 세상일 중 상식과 반대로 된 경우를 나열한 내용이다. 떠오르는 풍경이 많아 여기에 소개한다.

    지위가 높은 관리는 천하의 일을 근심하지 않는데, 초야의 사람이 도리어 근심한다. 문관은 군대일을 자주 말하나, 무관은 싸운 것을 즐기지 않는다. 재주와 학식이 있는 사람은 문장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학문도 없는 인간이 주로 떠든다. 부자는 돈쓰기를 즐기지 않지만 가난한 이는 돈을 잘도 쓴다. 승려와 도사가 버린 음식을 즐겨먹고 보통 사람이 도리어 채식을 한다. 관리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권세가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은데, 낮은 지방관은 도리어 군현을 장악하고 있다. 벼슬이 높을수록 물러나 쉬고 싶다 말하고, 벼슬이 낮을수록 제 공치사를 더 심하게 한다.

    천하 걱정으로 밤잠을 설쳐야 할 고관대작들은 제 한 몸 걱정하기 바쁘니, 아무 힘이 없는 재야에서 세상 걱정 짊어지느라 애들을 쓴다. 군대 문턱에도 안 가본 사람이 말만큼은 대장大將이다. 정작 힘깨나 쓰는 사람은 웬만하면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 부자는 틀어쥐어 안 써서 모르지만, 가난뱅이들은 생기는 족족 써서 더 가난해진다. 영문도 모른채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디서나 비전문가들이다. 고위 공직자들은 저마 아킬레스건이 있어서 상대의 불의를 알고도 결정적인 한 방을 못 내민다. 멋모르는 청백리만 먼 시골에서 원리원칙을 따지다가 불이익을 받는다. 제 공치사가 늘어지면 아무도 안 알아주고, 물러나 쉬겠다고 투덜대면 왜 이러시냐고 더 높은 자리로 올려준다. 세상일은 참 알수록 모르겠다. 하기야 공천 받아 국회의원 되는 일이 다급한데 장관이라 한들 나랏일 걱정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무지렁이 백성이 천하를 걱정하는 수밖에. 대학 시간강사의 법적 지위를 높여주겠다며 시간강사법의 본격적인 시행이 예고 되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전국 시간강사의 명줄이 하루아침에 다 끊어질 판이다. 생색내며 도와주겠다는데 정작 도움이 절박한 사람은 죄다 죽게 생겼다.”             정민, <옛 사람이 건넨 네 글자 : 세사상반>, pp.87-89.

 

2. “제자를 위해 기도하시다2(12-19)”을 읽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기도에서 매우 인상적인 것은, 당신에게 맡긴 제자들을 잘 지켰다는 보고와 함께, “멸망할 운명에 놓인 자를 제외하고라는 단서를 붙인 후, 하나를 잃었다고 말씀합니다. 분명 가룟인 유다를 말씀하고 있다 생각됩니다(12). 웬만하면 이런 옥의 티 같은 결과는 슬쩍 넘길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의 인생살이에서도 보이고 싶지 않고 그래서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아린 새끼손가락이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든지 변명 가능한 일일 수 있습니다. 가룟인 유다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악한 마귀의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누구도 막아설 수 없는 마귀의 능력이 작동한 것입니다.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서 99마리 양을 들판에 놔둔 채 힘썼던 그 목자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크게 깨달았습니다. 매일 우리는 실패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들이 한 겹 두 겹 쌓여 갈 때마다 얼마나 낙심하며 좌절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위로를 받고, 용기도 얻습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상처 난 마음을 아뢸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서 일부러 맛보신 쓴 상처라는 생각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말씀이 멈춰 서게 합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제자들로 하여금 당신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13). 그것은 제자들이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이른바 진영논리처럼 들립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아서 겪었던 미움과 설움을 그들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을 어째서 당신의 기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랬습니다. 제자들도 이제야 진짜로 주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기도의 핵심은 주님이 떠나신 빈자리에서 제자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될 것이고, 그래서 주님이 짊어지셨던 온갖 비난과 미움을 그들이 똑같이 맛보게 됨으로 주님의 마음에 쏙 드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제자들을 이 낯선 세상에서 데려가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낯선 세상에 덜렁 이방인처럼 남게 될 그들을 악마들로부터 지켜달라고 하십니다(15). 그래서 저들이 진리를 위해 온 몸을 바치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랬던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란 진리를 위해서 온 몸을 바치는 사람이 유일한 목표였던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엉터리 중보기도를 했습니까?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해 달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닮을 이유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