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정곡을 꿰뚫어 볼 다니엘을 찾아 나서기. / 단 5:1-12.
묵상자료 8014호(2023. 4. 26. 수요일).
시편 시 135:10-12.
찬송 421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 있다. 곧 말씀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그런데 그 말씀에 종종 지루함을 느낀다. 레위기 혹은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이 지파나 저 지파인지에 관한 긴 목록을 읽다보면, 시간낭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구시대의 것처럼 보이는 율법을 이해하려고 애쓰거나 강간, 근친상간, 문제가정, 피비린내 나는 전쟁, 거짓말과 도둑질, 험담, 편협, 좌절된 기도 같은 성경의 어두운 요소들에 관해서 읽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 든다. 때로 나도 성경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성경에 보면 부모의 죄로 인해 아이들이 죽는다. 권력자가 한 집단 전체를 억압하고 학대하고 노예로 부린다. 약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남들에게 상처를 주는 못된 자들은 번영한다. 하나님이 어떤 이들은 구해 주시고 어떤 이들은 그냥 놔두신다.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하나님의 법궤를 만졌다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 성경에서 예를 찾아보면 끝이 없다. 이런 불편한 장면들은 영감의 근원이 아닌 어둡고 왜곡된 막장 드라마처럼 느껴진다. <중략>.
성경에는 기쁨과 영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부분도 많지만,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부분도 많다. 특히 우리의 감정, 소망, 꿈, 기대, 전통, 문화적 가치와 상반된 부분들이 그렇다. 사람들은 성경이 스스로 모순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자신들의 생각과 모순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이다.”
스캇 솔즈, <세상이 기다리는 기독교>, pp. 59-61.
2. “벨사살의 운명(1-12절)”을 읽었습니다. 운명이라는 말은 동양인들은 비교적 긍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하는 것에 비해서 서양인 특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의 다른 말로 생각해서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입니다. 그래서 “이게 내 운명이야.”이렇게 말할 때, 강한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구들에서는 운명을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필연적이고도 초인간적인 힘”으로 정의하며, 이에 순응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동양인들과는 달리 “개인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서양에서는 운명에 순응하기보다는 운명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을 추구하”는 경향입니다. 오늘 본문의 표제어를 “벨사살의 운명”이라고 공동번역 성경에서 붙였는데, 이렇듯 운명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개념일 것입니다. 아무튼 느부갓네살 왕의 후임으로 왕좌에 오른 벨사살은 만조백관을 불러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온 금 은잔을 가져오라 명하곤, 그 금 은잔에 술을 따라 고관대작과 왕비와 후궁들과 함께 마시며, 금은동철 그리고 목석으로 만든 우상들을 찬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연회장의 벽면에 글씨를 썼는데 이를 본 왕은 머리가 아뜩해지고, 허벅지가 녹는 듯 하며 무릎이 떨려 마술사와 점성술사를 불러 이 글자를 해석하라 말하면서, 해석하는 자에게 자색 도포를 입혀주고 나라 안의 셋째 가는 벼슬을 내리겠다 명합니다. 물론 누구도 그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없었고, 왕은 사색이 되어 안절부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고관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왕비가 듣게 됩니다. 그 내용은 선왕(先王) 느부갓네살이 중용(重用)하였던 다니엘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근심하는 벨사살 왕 앞에 나선 왕비는 다니엘 얘기를 꺼냅니다. 그는 왕의 근심을 풀어줄 출중한 지도자라고 말입니다. 선왕이 “왕의 생명을 지켜주는 자”라는 뜻의 벧드사살 곧 다니엘을 부르시면 모든 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문제가 없는 세상을 살려한다면 누군가의 말처럼 세상을 떠나가야 할지 모릅니다. 문제투성이의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문제들은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인간들로부터 생기더라는 말입니다. 창세기 3장 이래로 인간은 문제를 만드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문제를 피해 사람까지 피할 수는 없습니다. 벨드사살 왕은 엄청난 문제가 막 벌어지려는 찰나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색이 된 그에게 왕비는 고관대작들의 뒷담에 귀를 기우렸고, 유일한 대안으로 하나님의 일꾼 다니엘을 소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꼬일 대로 꼬인 요즘 우리에게 하나님의 대변인 다니엘이 있는지 찾아볼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