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고난당할 때도 감사할 이유. / 렘 30:18-23.

박성완 2023. 5. 3. 00:00

묵상자료 8021(2023. 5. 3. 수요일).

시편 시 136:10-12.

찬송 79.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본의 문학 장르가운데 <하이쿠>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하이쿠는 일본어 17음절로 이루어진 짧은 시를 말하는데요. 세계 문학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글입니다만, 그것을 읽고 감상하는 과정에서 큰 매력이 묻어나는 문학 장르라고 합니다. 짧은 시가 함축하고 있는 그 여백을 따라가다 보면, 읽는 이들은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등, 다양한 이미지가 배합된 한 폭의 그림을 저절로 떠올리게 되곤 한다고 하는데. 우리 문학작품 중에도 이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 김춘수의 시가 그렇지요. 회화적인 언어 기법을 연구했던 그는 시를 읽는 것만으로 그림을 보는 듯한 작품들을 쓰곤 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누구나 김춘수의 시 <> 한 구절쯤은 암송할 수 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얼마 전 계간 [시인 세계]가 현역 시인 246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를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현역 시인들이 가장 자주 낭송하는 시로 꼽은 작품 역시, 방금 들으신 이 작품 김춘수의 <>이었습니다. 글쎄요. 아마도 전문가 비전문가를 떠나서, 각자의 시선에서 많은 이들이 마음으로 깊이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시 안에 담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존재 문제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연시로써도, 무척이나 인상 깊은 그러한 작품이지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53일 방송>

 

2. “이스라엘과 유다는 회복되리라 3(18-24)”을 읽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서 고생을 한다.”는 말과 함께 젊어서 하는 고생은 약이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찌하여 하나님을 자기 백성을 고난 속에 두고만 보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물론 대학에 들어가서도, 그리고 목회자로써 교회를 돌보던 시절에도 고난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뻔히 앞이 보이는 그런 고난이 아니라, 희뿌연 안개가 끼어있거나, 아예 캄캄한 그믐밤 같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때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 저는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이 어떤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가만히 보고만 계실까 하고 말입니다. 제가 마지막 목회지인 서울에 와서 이른바 옥수동루터교회 10개년 계획이라는 것을 큰 종이에 그래프 형식으로 그려서 당회실 벽면에 붙였습니다. 교회의 다섯 가지 기능인 선교, 봉사, 교육, 예배, 교제를 위한 10년 목표를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대부분 달성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한 사마리아회가 탄생했고, 모자 형식의 개척교회 후원 그리고 교육관을 지어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런 스타일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시련과 역경 속에 살고 있는 것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별로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은 그런 고난과 시련이 우리들 인생의 한 복판에 상주(常駐)하는 것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졸부 부모처럼 자녀가 필요하다 말하는 즉시 도움을 주지 않으신다고 말입니다. 그 까닭은 이렇습니다. 고난이나 역경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리석은 우리들을 위해서 그 훌륭한 스승을 오래 머물게 하신다는 깨우침입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화가 많이 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뜻 모를 고난이란 애당초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잘못을 통해서 벌을 받거나, 어리석고 헛된 욕심에 빠져서 시련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고난이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고 겸손하게 만들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시련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고난당할 때도 감사해야 할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3. 오늘 왕십리루터교회 심방 팀이 아산 집을 방문하십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