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삶은 그동안으로 충분합니다. / 렘 31:15-22.
묵상자료 8023호(2023. 5. 5. 금요일).
시편 시 136:16-18.
찬송 317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시간쯤이면, 아이가 있는 가정은 많이 지쳐 있으리라 싶네요. 거창한 어린이 날 나들이를 다녀왔던, 다녀오지 못해서 하루 조일 시달렸던 모두들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 하루였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만, 오래 전엔 어느 가정이나 아이들을 배려할 만한 환경이 되지 못했지요. 사회적인 혼란 또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사이에서, 매일 끼니를 이어가는 것마저 큰 걱정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고난의 시기를 살아내던 국민들을 위해서 대부분의 작곡가가 가곡을 만드는 것에 몰입하고 있을 즈음에, 남다른 길을 걸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어른들보다도 한층 소외 되어 있었던 바로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 동요에 힘을 쏟았던 시인들과 작곡가들이었지요.
“저 멀리 하늘은 구름이 간다/ 외양간 송아지 음메 음메 울적에/ 어머니 얼굴이 그리며 간다/ 고향을 부르면서 구름은 간다/ 저 멀리 하늘은 구름이 간다/ 뒤뜰에 봉숭아 곱게 곱게 필적에/ 어릴 제 놀던 곳 찾으러 간다/ 고향을 그리면서 구름은 간다”
초기 우리 동요를 이끌었던 이들은, 주로 어린이들의 복지를 염려해서 어린이날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색동회> 회원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정세문이나 윤극영, 손대업 같은 동요 작곡가나, 윤석중 주요한 같은 시인들이었지요. 초기 동요 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이었다면, 그 뒤를 이었던 이는 작곡가 이수인이었습니다. 작곡가 이수인 선생은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마산에서 교편을 잡고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아이들이 쉽게 익히고 따라 부를 수 있는 동요들을 선보여 왔지요. 훗날 마산을 떠나서 KBS 어린이 합창단의 상임 지휘자 다시 상경하게 된 후에도, 합창곡에까지 장르를 넓히며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곡들을 만들게 됩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5월 5일 방송>
2. “이스라엘과 유다는 회복되리라 5(15-22절)”을 읽었습니다. 같은 형제자매 지간인데도 불구하고, 저희 형님은 참 많이 야단을 맞고 자랐습니다. 9 자녀를 두신 아버지로써는 형님을 야단함으로 다른 자녀들을 모두 다 교육하신다 생각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제가 가장 야단맞지 않고 자랐다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로 집에서 쫓겨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화가 많이 났습니다. 땅거미가 짙어지고 사방이 어둠에 쌓이자 집집마다 불이 하나 둘 켜지는 시간까지 저는 집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습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저를 찾아 나오면 모른 체하고 따라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누군가의 밭가랑에 앉아 배가 고파오자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을 힘들게 하며 자랐습니다. 빨래터까지 가셔서 방망이질을 해서 옷을 빨아 오셔서 그걸 말려 다림질로 말리고 그렇게 옷을 입히면 곧 바로 진흙탕에 뒹굴던 옷으로 집에 들어갔으니, 제 엄마는 얼마나 화가 나셨을까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모습이 그 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피눈물을 흘린 후에야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라헬이 자식을 잃고 울고 있구나.” 자식 잃은 에미의 그 마음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런 아픔을 겪어야만이 철이 들고 속이 차는 것일까요? 북왕국 에브라임은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가 매를 맞는 것처럼, 고맙게 매를 맞았다는 소릴 하나님이 들으셨습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돼지 떼를 몰고 가는 목동의 뒤를 차를 타고 따라가고 있었다 했습니다. 날은 어둑해 가고 마음을 바쁘기만 한 대, 돼지들 중에서 유독 한 녀석이 대열에서 빠져나와 딴 곳으로 가려합니다. 그러면 목동은 여지없이 긴 회초리를 들어 내려칩니다. 그런데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매를 맞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가, 조금 후에는 또 다시 맞을 짓을 합니다. 우리들 인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젊어서 잘못한 일로 우리는 수모를 받았습니다.”고 뉘우치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냐, 에브라임은 내 아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나의 귀염둥이이다. 책망은 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잊은 일은 없었다. 가엾은 생각에 내 마음은 아프기만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늦었지만 이젠 철이 들어야 하겠습니다. 매 맞으며 사는 삶을 더 이상 되풀이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랑으로 뜨거운 가슴을 가지신 하나님을 더 이상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런 우리를 다시 찾으시고 데려오시겠다 하십니다.
3. 어린이날이 오면 더욱 더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