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헛되게 하는 것보다 바보같고 슬픈 일은 없다. / 렘 32:36-44.
묵상자료 8028호(2023. 5. 10. 수요일).
시편 시 137:7-9.
찬송 50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정이 많고 다감한 것은 우리 국민 전체가 지닌 민족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 하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나 정을 나눌 대상을 찾고, 그마저 쉽지 않을 땐 서로의 격조함을 못내 서운해 합니다. 우리 가곡 가운데 가장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제가 <향수>, 또 <그리움> 인 것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은데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곡들 가운데 채동선의 <향수>, 현제명의 <고향 생각>이 가장 먼저 손꼽히곤 하지요. 더불어 이은상의 시에 홍난파가 곡을 붙인 이 곡 <고향생각> 역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났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요.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게뭉게.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노산 이은상은 많은 문인과 석학들에게, 시대를 뛰어넘는 문장가로 칭송받아왔습니다. 평생 쉼 없는 글쓰기를 통해서 전통 시조 형식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완성한 새로운 형태의 시조를 선보였지요. 그가 남긴 시와 시조들은 2천여 편이나 되었습니다. 1932년 발표한 [노산 시조집]. 내로라는 작곡가들이 그의 곡의 붙여서 우리 가곡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완성한바가 있지요. <고향 생각> 역시도 바로 그 첫 시조집이었던 [노산 시조집]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노산이 글쓰기에 몰입했던 시기는 일본 유학에서 돌아 온 직후로 전합니다. 당시 완성한 시가 <고향 생각>, <사우>, <가고파> 같은 작품들이었지요. 고향을 그렸던 노산의 마음을, 작품을 통해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5월 10일 방송>
2. “예레미야가 밭을 사다 3(36-44절)”을 읽었습니다. 부모님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회초리를 드는 것은 생각이나 행동이 못나서 화가 난 때문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앞으로 건강한 정신과 몸으로 똑바르게 자라나기를 바란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남을 괴롭히는 것이나, 거짓말을 잘하고 헛된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면, 그의 앞날이 잘못되기 십상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모의 회초리를 오해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서 밧나가는 경우가 없지 않으니 참 마음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성현들은 자식을 훈육할 때 응석둥이로 키우는 게 아니라, 회초리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해 주는 지혜를 보여준 것입니다. 가령 루터는 회초리를 잡을 때는 반드시 사과 한 알을 옆에다 두고 야단을 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회초리는 미워서 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가르치고 계시는가를 눈뜨게 하는 말씀을 읽었습니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전쟁과 기근 그리고 염병으로 바벨론 왕의 손에 이 백성들을 넘겨주시지만, 그리고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져 살게 하시지만,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힘을 모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마음과 생활 태도를 변화시켜서 제대로 된 삶을 살도록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채찍과 시련은 뜻 없는 슬픔과 고통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적으로나 삶에서 부딪히는 고통에는 반드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멀고 먼 나라로 끌려가는 그런 처지에서도, 밭을 사고팔게 하셨고, 그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회복된 삶을 살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고난과 시련은 의미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제 치하나 동란과 같은 엄청난 시련을 겪었던 세대들에게서 발견하는 분명한 사실은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는 것 하나와, 고생 끝에는 낙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교육이었습니다. 여기에 크게 역할을 한 기관이 교회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교회에 다니던 친구들은 대부분 어떻게 하든지 배울 수 있는 방향으로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이었음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의대를 다니는 형들과 서울의 유수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나온 것입니다. 결코 고난과 시련은 슬픔만으로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1996년 미국 교회가 주일 예배에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아, 귀국하자마자 어른 예배에 어린이 설교 시간을 넣었습니다. 5-7분짜리 짧은 설교였지만, 그들을 성찬상 둘레에 앉히고 꿈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사랑을 20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성공할 수 밖이었습니다. 달동네 아이들이 훌륭한 젊은이들로 자라났으니 말입니다. 고난을 헛되게 할 순 없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