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 하늘 성전의 제사. / 히 9:1-14.
묵상자료 8045호(2023. 5. 27. 토요일).
시편 시 141:1-3.
찬송 20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림 복원사>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오래돼서 색이 바래거나 훼손된 그림을 제 모습으로 되찾아 주는 것이 바로 이 그림 복원사의 역할입니다. 화가로써의 재능과 미술사 전반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지식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인데요. 화가가 원래 어떤 재질의 그림을 그렸는지, 물감의 성분은 당시 어떤 것이었는지 면밀한 분석을 통해서 이들은 그림이 그려졌던 당시의 상태와 가장 가깝게 그림을 되돌려 놓습니다. 마치 타임머신의 마법처럼 말이지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여러분이 가장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언제이신지요?
<그림 복원사>의 역량은 단순히 과거의 그림을 얼마나 그대로 재현하느냐? 이것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최대한 원작을 살리되 또 다른 하나의 새로운 그림으로 완성해 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뛰어난 그림 복원사의 역할이라고 하네요. 복원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는 합니다만, 그림을 새로 그린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하나의 그림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도 연결해 주는 그러한 직업이니까 말입니다. 꽤 까다로운 작업이겠습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그림 복원사들이 스스로 가장 큰 보람을 느낄지도 모르겠네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5월 27일 방송>
2. “땅의 성전과 하늘의 성전(1-14절)”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었습니다. 백과 흑, 선과 악, 참과 거짓, 평화와 전쟁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분법적인 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런 이분법의 배경에는 분열과 미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서로 대립적인 이분법적 혹은 이원론적인 사고방식보다는 일원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랑과 미움이 아니라, 충만한 사랑과 모자란 사랑으로 보는 사고방식입니다. 남자와 여자라는 존귀와 비굴의 서열화된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보완하는 평등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의 차이가 빚어낸 결과는 참담하다 못해 절망적입니다. 제가 부산 YMCA 성경반에서 가르친 맹인 제자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세상을 잘 볼 수 있습니까? 그러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우리 맹인들을 붙잡아 주시고 도와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때 크게 깨우쳤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겐 병들고 연약한 이들에게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배운 사람에겐 못 배운 사람을 설득하고 도움을 줄 의무와 책임이 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땅과 하늘, 사람과 자연, 풍요와 빈곤은 불공평의 상징이 아니라, 조화와 아름다움의 기회가 될 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땅의 성전과 하늘의 성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땅의 성전은 인간이 마련한 장소에 세워졌습니다. 출애굽 40년 동안에는 성막(천막 성전)이라는 성전을 가지다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는 일정한 장소에 성소를 세웠습니다. 촛대와 빵을 진설한 상(床)이 있는 곳을 성소라 불렀고, 분향제단과 계약의 궤가 있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사제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이 성소였고, 지성소는 대사제가 1년에 한번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예배 규칙과 제도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명령하신 내용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제도를 따라 봉헌물과 희생제물을 바치지만 예배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제물을 바칠 때만 잠시 잠간 죄의 사슬에서 해방될 뿐, 또 다른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입니다. 제가 목회할 때 교우 중 한 분이 성균관에서 효자 대상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효자 맞느냐고 말입니다. 그 분은 절대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효자노릇 좀 하라고 자신을 선전용으로 삼고 있을 뿐이라고 말입니다.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제사가 만들어놓은 한계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성전을 주관한 대사제로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양과 송아지의 피가 아닌 자기 자신의 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그분의 피가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믿을 뿐 다른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신 희생의 제물은 예수 그분의 십자가뿐이라고 정하신 때문입니다.
3. 오늘은 저의 부친 57주기 추모예배가 이곳 아산에서 드려집니다. 아홉 남매와 자녀들이 모일 예정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부모님과의 추억을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