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나라와 하늘나라는 연속선상에 있는 나라. / 고후 4:16-5:10.
묵상자료 8066호(2023. 6. 17. 토요일).
시편 시 145:20-21.
찬송 246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경북 영양에는 주실 마을이라 불리는 한양 조 씨의 집성촌이 있습니다. 한양 조 씨는 예로부터 삼불 차의 원칙을 지키고 살아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재능이 뛰어나고 절개가 곧은 선비가 많아서 재물과 사람, 그리고 문장을 빌리지 않는다 해서 삼불차 이었는데요. 한양 조 씨의 종가 호은 종택은 바로 그 주실 마을의 가운데 위치해 있습니다. 시인 조지훈이 나고 자란 바로 그곳이지요. 주실 마을은 붓의 끝처럼 생긴 문필 봉(峯)과 그와 짝을 이룬 연적 봉이 있어서 글을 잘 쓰는 학자가 많은 난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지훈의 시에 등장하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마을은 아마도 자신의 고향 주실 마을을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메밀 꽃 우거진 오솔길에, 양떼는 새로 돋은 흰 달을 따라간다. 늴리리 호들기 불던 소치 던 아이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본다. 산 너머로 흰 구름이 나고 죽는 것을, 목화 따는 색시는 잊어버렸다. 늴리리 호들기 불던 소치 던 아이가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본다. 산 너머로 흰 구름이 나고 죽는 것을, 목화 따는 색시는 잊어버렸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시골 마을의 풍경이, 눈앞에 아스라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조지훈의 시 <마을>은 1948년에 발표한 시집 [백민]에 수록된 시입니다. 시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의 그림을 떠오르게 만드는 조지훈의 시가 지닌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 나있는 작품이지요. 조지훈을 비롯한 청록파 시인들은, 자연이라는 커다란 주제 안에서, 각각의 문학세계를 펼쳐 나갔습니다. 어떠한 작품에 있어서는 서로가 닮고자 하는 주제가 일치하기도 했습니다만, 많은 부분에 있어서 시인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대비되기도 했지요. 조지훈은 우리 것,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시를 통해 담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 시 마을을 조지훈의 작품 가운데서 청록파의 특징이 가장 잘 담겨있는 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6월 17일 방송>
2. “믿음의 생활(4:16-5:10)”을 읽었습니다. 서울 신촌 00교회를 담임하셨던 정 아무개 목사님의 예화입니다. 신실한 권사님 댁을 심방하였는데, 교회에 출석하지 않던 그 댁의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지한 말로 “교회 좀 나오시지요.” 라고 권했다 합니다. 그러자 그 남편은 자신은 매주일 자기 아내를 교회 정문까지 태워다 주고 골프 치러 갔다며, 그래도 교회 정문까지는 다녔을 뿐 아니라,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한다는 아내가 자기 혼자 천당에 가겠느냐며, 반드시 자신도 데려갈 것이라고 대답하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천국이란 자신의 믿음으로 가는 곳이지, 다른 누구의 믿음으로 갈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해줬다 합니다. 가끔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소위 직업적인 종교인들이나 힘쓸 일이지 평범한 신자들은 “믿습니다.”고 말하거나 아멘 할렐루야 같은 추임새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의 선교여행에 동행하였던 평신도 선교사들에게 선교 후기를 부탁했을 때, “남은 생을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고 싶다.”고 기록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하고 말입니다. 사도는 눈에 보이는 세상일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두 차례 전도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주를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는 땅의 집과 하늘의 집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지은 집과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라는 차이 말고도, 땅의 집은 불원간 무너질 것이고 그 다음에 영원한 하늘의 집에 들어설 것이라 말씀합니다. 그래서 땅의 집에 살면서 하늘의 집을 갈망하며 신음하고 있다 말씀합니다. 땅의 집에 사는 것과 하늘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는 것은 서로 대립관계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땅의 집에 살고 있으면서 하늘의 집을 갈망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땅의 집에 머물고 있는 육체의 삶을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대해선 안 될 것입니다. 육체에 머물기 때문에 주님을 멀리할 수도 있고,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육체의 삶을 피할 수도 없지만, 중요한 것은 땅의 집에서 살아갈 때 주님을 가까이 모시는 삶을 살든지, 언제나 힘써야 할 일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땅의 집과 하늘의 집은 호 불호나 선과 악의 대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하늘과 땅, 땅과 하늘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천지창조가 의미를 가지게 되며, 땅과 하늘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