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세례 받은 것을 기억하며 사는 인생살이. / 고후 6:1-14.

박성완 2023. 6. 20. 00:00

묵상자료 8069(2023. 6. 20. 화요일).

시편 시 146:8-10.

찬송 208.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글에서는 그 글을 쓴 사람의 삶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이나 지금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 그리고 살아오면서 서서히 굳어진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 말입니다. 감추려 애를 쓰거나 혹은 번번이 들어내고 마는 작가 개개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말입니다. 미당 서정주는 특히 미화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작품에 투영해 냈습니다. 유년기부터 시인의 생을 관통했던 가난과 글을 대하는 시인의 인생관은 미당의 시를 통해 들어나지요.

    “날이 날마다 드나드는 이 골목. 이른 아침에 홀로 나와서 해지면 흥얼흥얼 돌아가는 이 골목. 가난하고 외롭고 이지러진 사람들이 웅크리고 땅 보며 오고 가는 이 골목. 실없지도 아니한 푸른 하늘이 홑이불처럼 이 골목을 덮고, 하이야 박꽃 지붕에 피고, 이 골목을 금시라도 날아갈 듯이 구석구석 쓸쓸함이 물밀듯 사무쳐서 바람 불면 흔들리는 오막살이 뿐이다. 장돌뱅이 팔만이와 복동이의 사는 골목. 내 늦도록 이 골목을 사랑하고 이 골목에서 살다 가리라.”

    서정주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가난은 자주 등장하는 화두입니다. “애비는 종이었다.” 로 시작하는 시 <자화상>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은 극한의 가난을 경험했지만 생을 비관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난이냐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말할 정도로 가난에 초연했지요. 이 시 <골목>은 서정주의 첫 시집인 [화사집]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극한의 궁핍을 경험한 이로써는 가지기 힘든, 가난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이 느껴지지요. 시인은 물질적인 궁핍 안에서 오히려 사람의 내면은 더 빛을 발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말처럼 인간 본연의 빛을 잃게 하는 건, 어쩌면 물질적인 궁핍이 아니라, 정신적인 빈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619일 방송>

 

2.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1-14)”을 읽었습니다. 신앙인이건 아니건 간에 삶을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 가운데는 빈 말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하고 지켜줄거야.”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머슴으로써 충실하게 살겠습니다.” 이런 말들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때는 믿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대부분이 허언(虛言) 헛소리에 불과했습니다. 오늘 사도의 편지에도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자는 헛소리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헛소리가 아니라 세례가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세례란 예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서 죽으신 것처럼, 우리들 역시도 죄에 대해서 죽는 일이라는 것이며, 동시에 세례란 예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들 역시도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살아나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세례 예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는데, 세례를 받기 위해 물 속에 머리끝까지 잠가야하는데 이는 죄에 대해서 죽는 일이고, 그리고 곧 바로 물 위로 올라오게 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을 재현한다고 말입니다. 세례는 이렇듯 일회적인 행동이지만, 세례를 기억하는 삶이란 일평생 동안 계속되는 행동이라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매일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하고 우리 안에서 죄가 활개 치지 못하도록 죄가 무력하도록 죽어지내는 일이 필요하나, 동시에 날마다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주님의 은총을 맛보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례의 삶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은총이라고 말입니다.

    세례의 삶을 매 주일 새롭게 일깨우기 위해서, 우리는 주일 예배당에 들어가면서 세례대의 물로 자신의 이마와 가슴 그리고 양 어깨에 성호 긋기를 하면서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동시에 세례의 삶을 다짐하는 뜻을 표하는 전통을 따르는 것입니다. 죄에 죽고 그리스도의 의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는 신앙을 가지고 예배에 참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런 전통이 지난 2천년동안 우리 교회 안에서 계승되고 지켜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힘들고 고달픈 인생길을 걸어가면서도 수시로 성호 긋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된 것과,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살고 있는 것을 일깨우는 것은 또 얼마나 소중한 신앙의 유산인지 모릅니다. 오래 전에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만, 제가 사는 아산의 시골 한 감리교회 주일 예배에서 큰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오래된 기독교 예전을 따라서 온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미 없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있다는 것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기도 하고 살아나기도 하는 매우 값진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입니다. 세례를 기억함으로 죄와 육체의 욕망에 맞서 싸우고, 그리스도 예수의 도우심으로 다시 일어나서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