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식탁이 주는 의미. / 눅 22:1-13.
묵상자료 8090호(2023. 7. 11. 화요일).
시편 시 2:7-9.
찬송 282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얼마 전 일본에선 <꿈 제조기>라는 것을 발명했다고 합니다. 잠에 들려는 순간 소리 내 향기 같은 자극을 주면 관련된 꿈을 꿀 확률이 무척 높다는 것을 한 과학자가 발견했던 덕분이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꿈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매일 밤 꿈을 고르는 재미도 있겠지요.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되는 꿈, 영화배우처럼 근사한 이성과 만나는 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지는 그런 기분입니다.
잠들기 직전, 누구나 그 즈음 자기 마음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꿈은 현실의 반영이라는 프로이트의 이론은, 그러한 의미에서 타당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간절히 원하는 것, 늘 잊을 수 없었던 것, 마음속으로 끝없이 되뇌었던 일들이, 어쩌면 꿈에 등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끝없이 뿌리치고 싶고 실감하게 되는 현실의 벽 안에서, 어느 순간 이루고 싶은 것들은 그저 속으로만 생각하게 되곤 하지요. 우리가 꿈을 소리 내서 이야기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살까 망설이기도 하고 말입니다.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순간은 꿈속뿐이라는 것은 조금은 측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상할 수 있다는 것,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겠지요.
여름에는 편하게 잠이 들고, 개운하게 일어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잠들기 쉽지 않은 덥고 습한 날씨 때문이기도 하고요. 때로는 기억도 나지 않은 악몽에 밤새 시달리기도 하지요. 전문가들은 숙면을 위한 방법으로, 자극을 피하라고 말하곤 합니다. 몸과 마음 모두에 자극이 없이 편안한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숙면을 취할 수 있다고 권하지요. 하지만 현대인 가운데 자극 없는 삶이 과연 있기는 할까? 오히려 반문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 모든 것은 스스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지요. 아무런 잡념 없이 기절하듯 잠들 수 있는 몸이 고단한 하루, 그럴 때가 오히려 부럽기도 하고 말이고요.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7월 13일 방송>
2. “예수를 잡아 죽일 음모(1-2절)”, “유다의 배반(3-6절)” 그리고 “유월절 준비(7-13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셋째 단락으로, 유월절 준비라는 단락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공관복음서만이 아니라, 요한복음에서도 평행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일반적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에게는 매년 성인 남자들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명절이 있었는데, 그 중의 가장 큰 명절이 유월절 곧 해방 기념일이었습니다. 유월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출애굽 초기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으로, 영어로는 Passover 라고 불렀고, 히브리어로는 페사흐(פֶּסַח), 헬라어로는 파스카(πασχα) 절기라 불렀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에게 내린 열 번째 재앙인데, 장자와 초태생을 죽이는 저주로, 이때 이집트인의 집에는 저주의 칼을 든 천사가 예외 없이 들어가 장자와 초태생을 죽였는데, 유대인의 집을 암시하는 표시, 곧 대문에 뿌려진 양의 피를 보고 천사가 “건너 뛰어” 간 것입니다. 양의 피가 뿌려진 집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행실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살려준 것입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훗날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순전한 어린 양의 피로 해석하고, 이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그가 누구이든지 구원을 하신다는 초대 기독교의 신앙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평범한 유대인들처럼 유월절 식탁을 마련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현재의 삶과 연결 짓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아무 단순한 반복이거나 무의미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현재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미래로 연결해 주는 매개체가 된다고 말입니다. 우리들 인생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은 허투루 지나쳐버릴 일들이 아니라, 반드시 영향력이 있는 사건들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흑룡강성의 북쪽 지방도시인 치치하얼에서 26차례 교회 지도자 세미나를 열 때에 만난 조선족 한 가정이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그 가족의 초청으로 시내 식당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는데, 중학생인 따님을 데리고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만날 때마다 그 따님의 얘기가 중심이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는 것은 물론 특히 영어 과목이 출중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래 소망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당시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반기문 총장과 같이 세계를 누비는 외교관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제게 뭔가 도움 되는 말을 부탁하는 그 가족에게,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 까르페디엠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충실한 현재의 삶이 없이는 빛나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스웨덴 혼성 4인조 그룹인 압바의 “나는 꿈이 있어요.”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으로 불리는 유월절 식탁은 세상 풍파에 남겨진 제자들이, 기억할 때마다 힘과 꿈을 주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