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드린 검사들이 내놓은 두가지 질문. / 눅 22:63-71.
묵상자료 8097호(2023. 7. 18. 화요일).
시편 시 5:1-3.
찬송 275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환경 파괴로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면서, 많은 생물들이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에 한 겨울에도 양지에 개나리가 피고, 뚜렷했던 우리나라의 사계절에도 변화가 생겼지요. 사계절의 조화가 무너지고,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또 봄가을이 그래서 짧아졌습니다. 봄에 꽃구경을 나서고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바다나 계곡을 찾고, 가을에 단풍놀이를 갔던 것도, 어쩌면 어느 순간 옛말이 될 수도 있겠지요. 얼마 전엔 겨울 철새인 고니가 이 여름에 우리나라를 찾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석양에 지는 하늘위로 무리지어 날아가는 철새의 모습을 볼 날이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을 지는 들가 저 멀리, 어미 새는 울며 울며 날아갔을까? 낙엽 지는 하늘가 아득한 그곳, 아기 새는 울지 않고 바라보네. 하늬바람 불어 날 저무는데, 이제는 다시 오지 않는 그날에. 어둠 내린 하늘 끝 아주 멀리, 어미 새는 울며 울며 날아갔네. 하얀 눈이 녹아 겨울이 가고, 꽃이 피는 봄빛 날이 갈수록, 아기 새는 밤이 오면 어미 새가 그리워, 어미 품이 그리워서 울어 예네. 싹트고 풀잎이 돋아난 들에, 이제는 다시 오지 않는 날, 익어가는 햇살이 서글퍼서 일까? 아기 새는 종일토록 울어 예네. 시새움이 맘에 사무쳐서일까? 부르면서 울며 살아왔는데, 가시밭에 한 세월 던져 지내며, 기나긴 날 기다리던 어미 새와. 부드러운 노래 지금 어디로. 이제는 다시 오지 않는 그 날에. 구름 피는 하늘 끝, 아주 멀리. 나래 펴고, 하염없이 날아가시오.”
살기 편하게 세상이 점점 발전 하고 있다고 해도, 옛 모습이 너무 많이 훼손 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말할지라도 말이지요. 우리 곁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것들을, 이제는 조금 어렵게 찾아야 만날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그 모습조차 영영 자취를 감추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세대가 다를 지언정 추억이라는 것으로 서로 이어지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 필요하니까 말이지요. 붉은 노을 가득한 저녁 하늘에 검은 그림자로 이동하는 새들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모습입니다. 정해순 시 김규환 곡 양은희 노래 <철새>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7월 18일 방송>
2. “조롱당하신 예수(63-65절)”과 “의회 법정에 서신 예수(66-71절)”을 읽었습니다. 아침 형과 저녁 형의 인간 얘기는 지금도 가끔 나옵니다만, 저처럼 그리고 몇 묵상식구처럼 자정 형 인간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대체로 학자들이십니다. 연구논문을 쓰거나 독서중이거나 아니면 사색을 할 것 같은 생각을 합니다. 0시 0분에 읽음이라고 표시가 뜹니다. 우선 반가움이 가득하고, 건재하시구나 하는 생각과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억수 같은 장대비도 아니었는데, 이 작은 나라의 어느 곳에는 그런 장대비가 내렸다 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산사태에 떠밀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분들도 계실 텐데,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부디 안녕들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주님께서 조롱을 당하시고 종교(산헤드린) 재판에 서신 내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가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까지를 다스릴 수 있었던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는 통치 방식이 주효했는데, 오늘 본문에서처럼 피지배국의 언어와 신앙 등 문화를 허용했다는 점입니다. 말과 이름까지 빼앗은 일본 지배자들과는 달랐다는 말입니다. 산헤드린 의회는 유대인의 종교 법정으로 자신들의 신앙과 전통을 해석하고 판결하는 임무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건도 자신들의 종교적 문제로 취급한 것입니다. 산헤드린 의회 의원이란 백성의 존경받는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율법학자들로, 철저하게 준비된 심문이었습니다.
그 준비된 첫 번째 질문은 “그대가 그리스도인가?” 였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히브리말의 헬라어 음역이었습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로, 단 9:25,26에서는 이스라엘의 종말론적인 왕, 곧 구세주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당신은 메시야인가?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뜻밖에도 수긍하는 대답을 하십니다. “그렇다고 대답해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다.”고 말입니다. 그동안 초역사적 능력에 기반을 두고 있는 예수상이 당시의 교의학의 바탕을 두고 있었는데, 윌리엄 브레데는 공관복음서에 널리 퍼져있는 예수의 메시아 은폐의 근본목적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까지는 메시야이신 주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어서 비밀에 붙였다는 <메시아 비밀사상>이라는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첫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이런 메시아 비밀사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인가?”하는 물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주님은 그들이 던졌던 질문, “너희가 그리 말하였다.”고 대답을 대신합니다. 그렇게 해서 산헤드린 재판은 유죄로 판결을 내립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쉬운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첫 질문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와 예수의 관계를 따져보아야 했습니다. 둘째 질문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구약의 예언의 말씀들에서, 그리고 동시대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출현에 대해 성찰이 필요했습니다. 적어도 의회의원 니고데모처럼 말입니다(요 7:50-51, 19:39).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