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미처 있는 것들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서려면. / 막 1:14-28.
묵상자료 8108호(2023. 7. 29. 토요일).
시편 시 7:13-17.
찬송 203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인들의 아침은 조금 더 빨리 시작된다고 합니다. 꿀을 바른 빵과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8시가 되기도 전에 그리스 사람들은 직장에 도착해 있습니다. 정오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 점심을 먹고, 낮잠인 시에스타(siesta)를 즐기지요. 햇살이 얼마간 기우러지면 일을 마치기 위해서 다시 일터로 향하고 말입니다. 퇴근 시간, 그리스 사람들의 얼굴 미소로 가득합니다. 즐겁게 일을 마치고 다시 찾아오는 밤을 맞이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삶을 즐기는 방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듯 하지요. 일과 휴식을 뚜렷하게 분리해 내면서 말입니다. 그네들의 모습이 조금은 부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네요. 그리스인들의 삶이 즐겁고 여유롭게 보이는 것은 그 시에스타 라는 제도 덕분이라는 볼멘소리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가장 덥고 지친 시간인 오후에, 조금의 짬을 내 쉴 수 있다면 우리도 그만큼은 긍정적이고 즐겁게 지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헌데 하지만 막상 하루아침에 모든 국민들에게 시에스타라는 낮잠 시간이 주어진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렇게 마음 놓고 편히 즐기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삶을 즐기는 방식은 그 나라에 사는 사람들로써 각자 걸맞은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타고난 것일 테니까 말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7월 31일 방송>
2. “갈릴리 전도 시작(14-15절)”, “첫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어부 네 사람(16-20절)” 그리고 “악령 들린 사람을 고치신 예수(21-28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셋째 단락입니다. 제가 중국과 몽골 그리고 베트남에서 선교 세미나를 가질 때 몇 차례 악령 들린 사람들을 심방한 일이 있었습니다. 흑룡강성에서는 한 처자가 정신이상으로 헛소리를 한다며 저를 초청하였고, 몽골에서는 알코올 중독자로 자살을 시도했던 한 가정의 대주를 심방하였으며, 내몽고에서는 삶의 의미를 잃은 젊은 부인을 위해 초청을 받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세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초점을 잃고 살아가는 처자나, 알코올에 인생을 내던진 사람이나,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빈곤과 절벽과도 같은 미래가 그런 병을 앓게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만났던 한 사람도 그랬습니다. 그는 회당에 들어서는 주님을 향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못살게 하느냐? 우리를 없애려고 왔느냐? 나는 당신이 누군지 아는데 하나님께서 보내신 거룩한 분이시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꾸짖자, 악령은 발작을 일으키고 그 사람에게서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악령이 예수께 굴복하는 것을 보고, 수군거릴 뿐 아니라, 예수의 소문을 갈릴리 전역으로 퍼지게 했습니다.
소위 귀신들린 사람을 악령에 붙들렸다고 진단했습니다. 속된 말로 하면 미친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쟁 후의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종류의 미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혼잣말을 하는가하면, 울다가 웃기도 하고, 먼지를 머리에 뿌리는 사람들이 그런 이들이었습니다. 사연은 다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전쟁터에서 잃었거나, 학질(말라리아 감영병)이란 병으로 수도 없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제 아내와 처형의 나이 차이는 스무 살 가까이 되는데, 그 사이에 너 댓 명의 오라버니와 언니가 홍역에 죽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바이러스라는 호흡기 전염병으로 수천만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질병들은 가난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무서운 질병이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빼앗고 싶은 탐욕이라는 질병입니다. 이 탐욕이라는 질병 앞에서 사람들의 선한 의지나 아름다운 꿈들이 다 무너져 내렸습니다. 새삼스럽게 주님의 말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요.”(눅 6:20)을 새김질 하게 됩니다. 우리가 무엇에 미처 있는가 깨닫는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