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우리의 일을. / 막 5:21-43.

박성완 2023. 8. 11. 00:00

묵상자료 8121(2023. 8. 11. 금요일).

시편 시 10:7-9.

찬송 30.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화가 폴 세잔은 외톨이가 되는 시간을 즐겼던 것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 했던 나머지, 스스로 역시도 고독은 나에게 어울린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지요. 세잔의 그림을 극찬했던 사람들은 사교계에서 그와 어울리기를 고대했지만, 세잔은 틈만 나면 화구를 챙겨 인적이 드문 교외로 나갔습니다.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그림에만 몰입할 수 있는, 가장 한적한 곳을 찾아서 말이지요. 세잔이 즐겼던 혼자만의 시간, 그 오롯한 여유가 조금은 그리워집니다.

    늘 누군가에게 둘러 쌓여 있는 사람이라면, 혼자 남겨지는 시간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요. 고독이 일상인 사람이 때론 사람들의 훼방을 반가워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고독에 대한 그리움은 감정의 흐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채워지고, 또 반전되는 모래시계 같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고독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져가지만, 막상 고독의 시간을 누리다보면, 다시 또 사람들 사이에 서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보면, 그렇지요. 지금 이 시간 많은 사람들이 고독과 함께 인 시간 사이에서, 마음의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812일 방송>

 

2. “예수의 옷에 손을 댄 여자(25-34)”살아난 야이로의 딸(21-23, 35-43)”을 읽었습니다. 오늘 읽은 두 본문엔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믿는 자에게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두 인물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사람들에게는 물론 예수님도 어느 정도 알고 계셨던 분으로 가버나움 회당장 야이로라는 인물과, 열 두해 동안 혈루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이름 모를 한 여인이 그들입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으나 그가 사랑하는 딸이 병명도 모르는 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또 다른 한 인물인 이름 모를 여인은 피가 멎지 않는 혈루병으로 열 두 해나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부자이면서 존경받는 사람도, 가난하면서 천대받는 여인도 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세상의 의술이 발전한 오늘날 역시도 난치병이나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고 많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모두 이런 난치병과 불치병에 도전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회당장 야이로는 주님을 찾아와서, 주님께서 딸 아이 몸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을 것이라 믿음을 고백했고,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그보다 더 큰 믿음을 가졌는데, 자신이 주님 몰래 주님의 옷자락만이라도 손을 대면 나을 것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였는데 그 무서운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원천이신 우리 주님께 내던지는 행위 말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와 열 두해동안 혈루병을 앓는 여인에게서 우리들이 눈 떠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들 삶과 영혼을 온전히 맡겨야 할 분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라는 것이며, 둘째는 이를 위해서 우리들 인간이 직면하는 심각한 위기 때마다 주님을 향해 팔을 내 밀어야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그런 믿음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입니다. 엊그제 지인 장로님께서 안부가 궁금하시다 며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약국과 병원을 찾는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당장 고통스러운 치통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진통제를 구해 두는 일이며, 눈이 침침해지고 눈에 눈곱이 자주 끼어서 안과를 찾는 일이며, 머리가 수시로 아픈 것도 예삿일 같지 않고, 변비에 숙면을 방해하는 전립선 문제 등 등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는 형편라라고 말입니다.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환자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을 구별하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지혜인 것 같습니다. 우리들 신앙생활에서도 예외 없이 파생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믿으니까 만사태평하게 살아도 된다는 거짓 구원에 취할 수도 있고, 어떻게든 시간과 물질 그리고 노력을 기우려 하나님을 귀찮게 해야 한다는 이른바 인간 중심의 열성파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잘못된 신앙인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일상을 주님과 동행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말입니다. 태산 같은 걱정들을 껴안지도 말고, 무사태평한 사람처럼 거짓부리 신앙으로 자만하지도 말고 말입니다. 그래서 로버트 브라우닝의 <피파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시가 되었나 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