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기대하시는 존경받는 삶. / 막 6:1-13.
묵상자료 8122호(2023. 8. 12. 토요일).
시편 시 10:10-13.
찬송 35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성찬경은 인권에 맞서서, 물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가 있듯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 역시도 스스로의 존재를 존중받을 마땅한 권리인 물권이 있다고 말을 했지요. 성찬경의 시는 그러한 시인의 철학을 닮아서, <볼트와 너트>에서 <벌레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상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시인은 시를 통해 우리 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의 존재의 의미를 하나하나 새롭게 새기는 과정을 담아냈습니다. 세밀한 언어에 정제를 통해서 말이지요.
“눈물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눈물 안에 여러 빛이 어려 온다. 무지개 사리 알 구슬 따위가 뿜는 그런 빛이다. 어쩌다가 고인 눈물이다. 그러나 이 눈물 밑엔 무거운 삶의 짐이 산으로 솟아 있다. 잠시 고인 눈물에서, 깊은 평화를 얻는다. 눈물에 비치는 세상은, 역시 아름답기 때문이다. 눈물이 마음 안에, 고운 노을로 퍼진다.”
눈물은 감정을 정제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로 정의내리기 힘든 불순불이 섞여 있는 감정도 눈물을 거치면 좀 더 또렷한 하나의 모습으로 떠오르기도 하지요. 참을 수 없는 슬픔이나 고통은, 별다른 대안이 없이도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 위로를 얻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동안 저질렀던 실수나 잘못이 눈물로 용서를 얻기도 하고 말이지요. 눈물은 그처럼 생을 이루고 있는 가장 중요한 감정인 희로애락 모두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바로 그러한 눈물에 복합적인 의미를, 시를 통해서 담아냈습니다. 성찬경 시, 황철익 곡 <눈물>이었습니다. <KBS FM 1, 노래의 날개 위에, 2008년 8월 13일 방송>
2.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한다(1-6절)”과 “열 두 제자의 파견(7-13절)”을 읽었습니다. 오늘 묵상은 첫 단락입니다. 미국 단편소설 작가 나다나엘 호손은 <큰 바위 얼굴>이라는 작품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국어책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미국의 어느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마을 건너편 산에 사람 얼굴 모양을 한 바위가 있는데, 그런 큰 인물이 그 마을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전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큰 인물이 나와서 마을을 자랑스럽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며, 그동안 그 마을 출신으로 수많은 인물들이 떠 울렸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인간 자체로는 함량미달이어서 실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아이들을 마을 뒷산 잔디밭에서 가르치고 있는 한 마을 아저씨가 석양빛을 받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큰 바위 얼굴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찾고 있던 큰 바위 얼굴이란 “진실 된 삶을 살며, 모두에게 겸손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시대의 어른을” 희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나 제나 사람들은 엉뚱한 것, 또는 어리석은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는 일침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고향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란, 나다나엘 호손이 말하고 있는 그런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진실하고 겸손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인물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말입니다.
나다나엘 호손처럼 예수님도 존경받을 인간상을 가르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새로운 눈으로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첫째는 건전한 직업관을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높은 자리 힘센 자리의 직업관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건전한 직업을 추천하십니다. 목수나 농부 혹은 어부라는 직업처럼 말입니다. 둘째는 가장 평범한 삶을 살라 말씀하십니다. 온갖 고생을 감수하고라도 돋보이는 삶을 살려고 발버둥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누구나 다 가능한 그런 평범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링컨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사람은 보통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사람이 그렇게 많이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셋째는 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과 평화롭게 어울리는 갑순이와 갑돌이가 되라 말씀하십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년 만에 오장동 함흥냉면을 먹고, 청계천에 발을 담글 요량으로 내려갔는데, 영국에서 왔다는 십대 청소년 3명을 게서 만났습니다. 그들은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에 참석중인 영국 학생들이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세계 평화를 배우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참 기특한 생각이었습니다. 유럽에서 전해오는 전쟁소식이 더욱 더 평화를 위해 힘쓸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