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대화란 지난(至難)하다. / 막 8:31-9:1.
묵상자료 8133호(2023. 8. 23. 수요일).
시편 시 14:4-7.
찬송 98장.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밤은 하루의 다른 시간대 보다 마음을 보이기가 한결 수월하지요.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한낮의 기운을 빌면 오히려 좀 덜 쑥스러울 것도 같지만, 밤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밤은 사람의 마음을 동요 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밤의 고요와 적막함은 열 받던 감정도 좀 더 농밀하게 만들지요. 절실하고 애달파서 마치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를 잃을 것처럼, 마음을 매달리게 만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밤이 지닌 마력이지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독과 그리움이 배어나오는 바로 그러한 시간 말입니다.
“별이 내리는 밤이 오면 환히 웃는 너를 만난다. 초사흘 밤새 꿈을 꾼다. 어느새 너를 안고 어느새 돌아가는 우리의 새벽이 온다. 달빛 내리는 밤이 오면, 손을 잡는 너를 만난다. 보름달 둥그렇게 빛나는 눈빛 그리며, 밤새 꿈을 꾼다. 한바탕 너를 안고 한바탕 돌아가는 우리의 새벽이 온다.”
담담한 시어와는 대조적으로 깊은 감정의 호소가 느껴집니다. 수식이나 늘어뜨림이 없이 시인의 시어는 직선적이고 담백합니다. 조금은 여성적인 어투로 여린 마음을 담고 있는 듯도 보입니다만,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사랑을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얼마나 크고 단단한 것인지 엿볼 수 있습니다. 안에 가두어두기 보다는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너를 마음이 이 시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지요. 박 남건 시 김 동환 곡 <별이 내리는 밤> 메조소프라노 정 영자가 불렀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년 8월 23일 방송>
2.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31-9:1”을 읽었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자신의 모국어를 들어도 약 70%만이 이해할 뿐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듣는 체 하더라도 실상은 70%만 알아듣게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알아듣고 있다는 제스쳐인 고개를 끄덕임이란, 사실은 자기 방식으로 알아듣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외국인 유튜버가 한국인들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란 “어”라고 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듣는 사람은 계속해서 “어”라는 말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더라 며 놀라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의중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계속 “어”라고만 대답하는데, 과연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가벼운 친구 사이의 대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사업상으로 하는 말은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일생을 바꿀 결혼이나 이혼을 얘기하는 때에는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들, 곧 장로들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죽임을 당할 것과 그러나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적어도 마가복음서에서는 세 번씩이나 수난 예고의 말씀을 하시는데, 이 엄청난 말씀에 대해서 제자들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복음서의 주장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수난과 죽으심에 대해서 제자들이 알고 있기를 바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총 동원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셋이란 숫자를 최선의 숫자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반응은 엉뚱한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냐면서 그런 말씀도 그런 일도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거부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태도는 더욱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습니다. 그의 주특기인 호언장담으로 대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심각한 대화의 단절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질 뿐 아니라,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극단적인 말씀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제자들은 삶과 죽음, 주님의 십자가와 자신들이 짊어질 십자가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스스로 신실하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은 영광의 면류관에 취해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짊어질 십자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준비하지도 염려하지도 않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생각 없는 크리스천들의 현실입니다. 성경은 부유와 번영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장 타락하고 잘못되었었다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시련과 역경의 시대에 샛별처럼 빛나는 크리스천들이 하나 둘 빛을 비추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