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자료

악령이 아니라 말씀에 붙들린 삶이되길. / 막 9:14-29.

박성완 2023. 8. 25. 00:00

묵상자료 8135(2023. 8. 25. 금요일).

시편 시 15:4-5.

찬송 236.

 

1.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곡의 특징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서정적이고 애상적이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가곡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먼저 연상되는 이미지가 조금은 곱고 여성적인 것이 많이 있지요. 하지만 예외인 작품들도 있습니다. 작곡가 변 운이나 현제명 조두남의 초기 작품 등이 그렇지요. 다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남성적인 가곡은 시원스러운 매력이 있습니다. 듣는 것만으로 기분을 호쾌하고 너르게 만들어 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말이지요.

    “복한의 모래알이 긴 그림자 드릴 녘, 꼴망태 짊어진 뒷집 녀석 소방을 찾는다. 검은 고무신 한 짝엔 피라미 새끼 두어 마리, 검게 그을린 얼굴엔 하얀 웃음 두어 줄. 자맥질로 젖은 머리는 모르는 새 마르고, 황소 뒤에 가려져 꼴망태에 숨겨져, 떨렁 방울 황소는 다리가 여섯 개. 은빛 개울 둑 위엔 다리가 여섯 개. 복한의 모래알이 긴 그림자 드릴 녘, 꼴망태 검은 고무신 은빛 개울 거울 속엔 허허, 하얀 웃음 서너 줄.”

    호탕하고 쾌활한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곡입니다. 꼴망태나 자맥질처럼 잊고 있던 시어들이, 옛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정겹지요. 노을이 지는 시골 마을 사이로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난기 가득한,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이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1986에 열렸던 대학 가곡 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이 기경은 이 후 전국 대학생 합창 경연대회에서도 대상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 영미 시 이 기경 곡 <거기> 소개해 드렸습니다. <KBS FM 1, 정다운 가곡, 2008825일 방송>

 

2. “악령에게 사로잡힌 아이(14-29)”을 읽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오늘날처럼 정확한 병명을 알지 못해서, 고치기 힘든 병이나, 또는 정신분열증과 같은 질병에 대해서는 악령에 들렸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질병은 증상이 나타나면 몇 가지 독특한 현상이 생기는데, 첫째는 발작을 하고, 둘째는 땅에 뒹굴고, 셋째는 거품을 내뿜고, 넷째는 이를 갈며, 다섯째는 몸이 뻣뻣해진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런 환자들을 어린 시절 고향에서도, 그리고 대학에서 가르칠 때도 만났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병을 뇌전증(간질, Epilepsy)이라고 부르는데, 응급 처치 법은 편하게 땅에 바르게 눕혔다가 20-30분 후 안정을 취하게 되면,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일어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옵니다. 여성일 경우 옆에서 발작을 할 때는 보기가 참 민망하지만, 주변에 물이나 불이 없다면 그렇게 두려워할 병이 아닙니다. 물론 예방약도 있어서 사전에 증후를 느낄 수 있고 약을 먹으면 심한 발작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강원도에서 왔던 저의 학생은 병원 치료를 받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천 년 전에 이런 병을 앓고 있었던 젊은이를 그의 아버지가 주님께 데려와, “하실 수 있다면 도와주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주님은 할 수만 있다면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시고, 악령을 불러내시니 발작을 하면서 그에게서 나갔는데, 사람들은 그 아이가 죽었다고 웅성거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뒤에 제자들은 자신들이 악령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기도하지 않고는 그런 것을 할 수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악령에 붙들린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속수무책인 이 질병에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허깨비에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얘기입니다. 어쩌면 제정신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악령에 붙들린 사람들 모습입니다. 허깨비에 불과한 것들(부귀영화)을 위해서 신념도 버리고 우정도 버리고 심지어 가족까지 버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나이가 들어보니까 그동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하찮은 것들이었고, 깃털보다 더 가벼운 보잘 것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영원한 것은 고사하고 이생에서도 평생 누릴만한 긴 기쁨도 아니었고, 보람이나 행복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허망한 것들을 붙잡아 보려고 죽을힘을 다해서 달음질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려야 할 진정한 행복이란 순간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인 주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기쁨을 발견한 사람들은 육신의 삶까지도 초개처럼 떨쳐버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3.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